지난해 4·4분기 어닝시즌이 본격화한 가운데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깜짝 실적을 내놓고도 주가가 오히려 역주행하는 종목이 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특히 이는 지난 CJ E&M 사태 이후 실적과 주가 간의 상관관계가 높아지고 있는 최근 흐름과 대비되는 것이어서 투자자의 머릿속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주가는 살아 있는 생물과 같아 이미 과거가 된 데이터보다는 앞으로 발생할 호재 또는 악재에 미리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사상 최대 실적이라는 표현 뒤에 숨어 있는 여러 요인을 꼼꼼하게 따져 투자하는 습관을 기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화려한 수사에 현혹되지 말고 해당 종목에 돌발악재는 없는지, 사업 전망은 어떤지 등을 미리 살펴보라는 얘기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SK하이닉스(000660)는 전날보다 3.66%(1,800원) 떨어진 4만7,400원에 거래를 마쳤다. SK하이닉스는 전날 장 마감 후 사상 최대의 실적을 발표하며 이날 시장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주가는 오히려 떨어졌다.
SK하이닉스는 전날 공시를 통해 사상 처음으로 연간 5조원대 영업이익을 냈고 4·4분기 영업이익 역시 분기 기준으로 최고치인 1조6,672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4·4분기 영업이익은 시장 예상치 평균인 1조5,856억원을 5%가량 웃도는 수치다. 증권가도 SK하이닉스의 장기 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라며 앞다퉈 목표주가를 올리는 등 분위기를 띄웠다. 이날 HMC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5만5,000원에서 6만원으로 9.1% 올렸고 메리츠종금증권과 삼성증권도 각각 16.98%, 9.3% 올렸다.
시장의 기대와 달리 주가가 3% 넘게 빠진 이유는 뭘까. 시장 전문가들은 회사 측이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1·4분기 D램과 낸드 출하 증가율이 경쟁사에 비해 떨어질 수 있다고 언급한 점을 꼽는다. 지난해 기록한 사상 최대 실적은 이미 지난 일로 주가에 반영된 반면 올 1·4분기 출하량 감소라는 악재는 아직 본격적으로 주가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뒤집어 말하면 4·4분기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도 주가가 당분간 조정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예측이라도 한듯 이날 기관은 621억원, 외국인은 411억원을 내다 팔아 손실을 줄였지만 개인은 1,029억원을 사들이며 결과적으로 손해를 봤다.
남대종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올 1·4분기 SK하이닉스의 D램과 낸드플래시 출하량이 5%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경쟁사인 삼성전자는 시장 성장률을 웃돌 것이라고 밝히면서 시장 점유율 하락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면서 "4·4분기 실적은 주가에 이미 반영된 상황이라 앞으로 불확실성 증대로 주가가 조정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원가절감과 생산량 증대를 위해 필요한 20나노급 생산공정이 늦춰질 수 있다는 점도 주가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투자자 입장에서는 섣불리 매수에 나서기보다는 이 같은 불확실성이 해소된 후에 매수 타이밍을 잡아도 늦지 않다는 얘기다.
LG전자(066570)와 LG유플러스(032640) 등도 깜짝 실적에 비해 주가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LG전자는 5년 만에 사상 최대치인 1조9,28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올해 사업 전망이 어둡다는 분석에 주가가 이틀 연속 약세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4·4분기에 우려했던 단말기 부문이 비교적 선방했지만 올해는 G5의 신모델 출시 시기가 늦춰질 수 있고 TV 등 가전 부문은 북미시장의 경우 삼성전자와 경쟁이 치열해지고 신흥국 시장의 경우 환율불안 등의 요인으로 의미 있는 실적개선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지난해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달성하고도 주가가 부진한 것은 이 같은 우려가 반영된 탓"이라고 진단했다.
LG유플러스는 지난 23일 4·4분기 영업이익이 시장 예상치(1,600억원)를 크게 웃도는 1,906억원을 기록했지만 주가는 실적 발표 이후 5% 가까이 하락했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최근 경쟁사인 KT가 아이폰5S에 대한 공시지원금을 대폭 올리면서 마케팅 비용 증가와 시장 점유율 하락 우려가 제기되며 깜짝 실적에 대한 효과를 짓누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오승훈 대신증권(003540) 투자전략팀장은 "CJ E&M 사태 이후 실적 발표와 주가 간 상관관계가 높아졌지만 실적은 투자 시 과거의 자료라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면서 "실적이 좋다고 무조건 매수하기보다 실적 발표 전까지의 주가 흐름을 따져 실적 대비 주가가 많이 빠진 종목은 사고, 주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거나 돌발 악재가 발생할 수 있는 종목은 투자 타이밍을 늦추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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