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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상반기 국내 은행 해외영업점의 현지화지표를 평가했다. 93개 영업점의 현지화지표를 평가한 결과 3등급이 나왔다. 5단계 중 중간이었지만 금감원은 '미흡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현지에서 자금을 운용하거나 돈을 빌리는 비중이 낮아서였다. 금감원은 국내 금융회사들이 보다 적극적인 현지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그만큼 국내 은행들의 현지화 정도는 아직 걸음마 수준인 셈이다.
해외를 향한 국내 금융회사들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다. 매년 해외진출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올해의 상황은 남다르다. '월가 탐욕시위' 이후 수수료ㆍ대출금리 인하 요구 등 국내 영업환경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돈을 벌어오지 않으면 양적 성장은 물론 질적 성장도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나갈 수도 없는 일. 해외 진출에도 변화된 틀이 요구되고 있는 셈이다.
◇변화하는 해외진출…현지 네트워크 만들어라=국내 금융회사들이 해외에서 돈을 벌어오는 데 걸림돌은 해외 현지화다. 현지에서 돈을 차입하거나 운용하지 않다 보니 의미 있는 성장을 하기 어렵다. 실제 지난해 금융연구원이 국내 3대 금융지주사와 해외 주요 10개국 은행들의 국외 영업이익 비중을 조사한 결과 국내 은행은 해외 수익비중이 평균 1.4%, 다른 나라는 평균 37.4%가 나왔다. 주요 선진국 은행들은 전체 수익의 3분의1 이상을 외부에서 벌어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 현지화가 부족한 것은 공격적으로 영업에 나서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손쉽게 장사할 수 있는 국내 기업 등에만 의존하고 현지 인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소홀하다는 얘기다. 국내 금융회사 해외지점도 현지 네트워크가 부족해 차입이 사실상 어렵다고 인정할 정도다. 금융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현지에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면서도 "국내 금융회사들이 타성에 젖어 교포나 국내 기업들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짙다"고 지적했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금융권 관계자들은 현지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현지화를 가능하게 하려면 금융선진국보다는 우리가 비교우위를 가진 동남아 지역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영국에 진출한 국내 은행지점의 현지화 종합등급은 4등급으로 가장 낮다. 영국의 경우 현지고객 비율, 현지예금 비율 등이 최하위권이다. 미국은 종합등급은 3등급이지만 현지직원 비율이 4등급이다. 이들 국가의 경우 우리나라 은행의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자금수요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도네시아ㆍ베트남 등은 해볼 만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국내 은행들은 소매금융에 강점이 있고 정보기술(IT) 부분에서는 세계최고 수준이다. 이에 따라 국내 은행들의 해외진출시 동남아 등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중에서도 현지에서 법인을 운영하다가 현지 은행을 인수해 몸집을 키워나가는 씨티의 방식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현지에 법인만 운영해서는 규모 있게 키우기가 힘들다"며 "법인을 운영하면서 현지 분위기와 당국의 규제방침 등을 파악한 후 현지 은행을 인수해 성장해나가는 방식이 유리하다"고 전했다.
◇국내 영업환경 악화에 해외진출은 필수=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연초부터 "국외 3군데에서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있다"며 해외진출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신한도 인도네시아 현지은행 인수를 추진 중이고 하나도 미국 등지에서 인수물건을 물색하고 있다. 이처럼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이 해외진출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것은 국내 영업환경 때문이다. 은행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있는데다 올해는 총선과 대선 등 선거일정이 맞물려 있어 대출금리 인하 압박 등이 한층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은행은 이달부터 총 4,000억원 규모의 중기대출 금리, 수수료 인하 지원책을 펼치고 있고 신한도 금리를 최대 1%포인트까지 낮추는 중기대출 상품을 내놓았다. 국민ㆍ우리ㆍ하나도 신상품 등을 통해 중기대출 금리를 인하할 예정이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은행은 줄어드는 수익을 대체할 만한 것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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