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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서울역을 지나가면서 본 '수출 100억달러 목표 달성'이라는 현수막이 가장 기억난다. 당시는 수출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렸다. 국민들에게 우리도 하면 된다는 생각을 심어주던 때다. 서울경제신문과 동갑내기인 최희남(55)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은 31일 "수출 확대를 위해 전 국민이 함께 뛰던 시기라는 점에서 기억이 생생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우리 경제의 역사는 곧 수출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원 빈국에다 변변한 기술도 없던 시절, 수출은 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정부는 수출 확대에 사활을 걸었다. 모든 경제정책의 근간도 수출을 중심으로 짜였다. 수출에 대한 각종 지원과 더불어 특정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전형적인 산업정책이 진행됐다. 정치적으로는 억눌렸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핵심 과제였기에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는 빠른 속도로 국민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산업통상자원부 출신인 성시헌(55) 산업기술평가원장은 "고위급부터 말단 직원까지 모두 밤낮없이 수출 경쟁력 강화에 매달리던 시절"이라며 "무역의 날(수출의 날) 행사 때마다 그동안 이룬 성과를 보며 뿌듯해했다"고 회고했다. 당시에는 대통령이 직접 산업부(당시 상공부) 직원들을 격려하고는 했다고 한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1980년 수출 100억달러 목표는 계획보다 3년이나 이른 지난 1977년 달성하게 된다. 지난해 말 수출은 5,727억달러, 수입까지 합친 무역 규모는 1조982억달러에 이른다. 우리 경제도 수출과 함께 성장해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꾼 외환위기도 빼놓을 수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의 대가는 혹독했다. 부실 기업이 정리되면서 수많은 근로자들이 거리로 내몰렸고 실업률은 전년의 2.6%에서 6.8%까지 치솟았다. 제일은행 명예퇴직 직원들의 '눈물의 비디오'에 전 국민이 함께 울었다. 고통을 짊어진 결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1999년 우리 경제는 전년도 마이너스 6.7%의 성장률에서 일어나 10.7%라는 큰 폭의 성장을 이루게 된다. 성 원장은 "IMF 외환위기 등 어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선 데는 금 모으기 등 우리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똘똘 뭉친 힘이 가장 컸다"고 평가했다.
/특별취재팀=김홍길 사회부·김정곤 경제부·민병권 국제부·이재용 건설부동산부 차장, 김광수 정치부·박진용 성장기업부·나윤석·임진혁 산업부·김경미 문화레저부 기자 newsroo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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