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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헷갈리는 재벌개혁
입력1998-12-01 00:00:00
수정
1998.12.01 00:00:00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전세기간이 1년이나 남았는데도 집주인이 전세값이 오르니 방을 빼든지, 세를 올려 달라고 한다. 세입자는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았으니, 그때가서 계약금을 올려주겠다고 통사정을 하는데도 집주인은 막무가내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현실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가정같지만 이같은 일이 지금 정부와 5대그룹간에는 일어나고 있다. 기업에게 구조조정을 하라고 다그치고 있는 정치권과 정부의 압박이 그렇다. 세입자는 법률에 근거해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구조조정은 법률에도 없어 보호받지 못하는게 좀 다를 뿐 방을 빼라, 아직 약속시한이 다 지나지 않느냐고 옥신각신하는 상황은 엇비슷하다.
정부가 5대 대기업, 이른바 5대재벌에 제시한 개혁프로그램의 이행시한은 오는 2000년3월말까지다. 그때까지 부채비율을 200%로 낮추라는게 골자다. 그런데도 금년말까지 확답을 하라는 것이다. 의지만으로는 안되는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내라는 요구다. 기업을 팔려고 내놓아도 너무 헐값이니 좀 더 시간을 달라고 해도 「쓸데없는 소리」라며 핀잔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재벌을 해체하라고선 정책은 아직도 과거 30대재벌을 관리하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미 선단석(船團式) 경영의 병폐로 지목돼 온 선단(先端), 이른바 그룹기획조정실이나 종합조정실을 폐지했다. 그러나 정부는 기업관련 정책을 수립할 때 30대그룹 기조실장을 찾는다.
사업맞교환, 속칭 빅 딜에 대한 원칙도 없다. 반도체와 석유화학의 경우가 그렇다. 반도체는 당사자들이 서로 하기 싫어하는 조정대상업종이다. 정부가 여신제재를 가하더라도 핵심사업이기 때문에 금융상의 불이익을 감수하더라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유화업종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으니 포기하겠다며 빅 딜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유화는 구조조정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기업의 의지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기업개혁을 지시하는 명령자도 너무 많다. 명령자들의 원칙도 서로 다르다.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청와대의 말이 같지 않다. 이익을 좇는 기업으로서는 당연히 유리한대로 해석하기 마련이다. 기업개혁작업이 늦어진 것도 개혁의 고삐를 쥐고 있는 주체간의 입장이 달랐기 때문이다.
황망지중에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이제는 정신을 추스릴 때도 됐다. 체계적인 재벌개혁이 필요하다.
참다 못한 대통령이 기업개혁작업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이제는 개혁주체들이 한목소리로, 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종자가 아무리 좋은 나무라도 자주 옮겨 심으면 잘 자라지 않는다. 뿌리를 내려 생장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경제정책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정책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일관된 정책이 추진되기를 바라는 마음, 비단 기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김희중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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