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과거 적대적 M&A와 비교

주식을 매수해 경영권을 장악하는 적대적 M&A는 최근까지 우리 사회정서와는 다소 거리가 먼 것이었다. 맨손으로 창업해 탄탄하게 기반을 닦은 기업을 제3자가 나서 경영권을 탈취하는 일은 마치 강도 짓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게 일반적인 정서였다.실제로 97년 초 신동방이 대농그룹 계열의 미도파를 적대적으로 M&A하려하자 "외국자본에게 국내기업이 송두리째 넘어간다"는 신동방 규탄 여론이 들끌었다.

심지어 전국경제인연합은 회장단 회의를 열어 미도파의 경영권을 옹호하는 성명서를 내기까지 했다. 덕분에 초반 불리한 싸움을 벌이던 미도파는 재계와 여론의 도움으로 경영권을 지켜냈다. 당시에는 기업 경영권을 강제로 인수하는 행위는 나쁜 짓이란 여론이 팽배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크게 변했다. 조광페인트와 대한방직의 적대적 M&A에 대한 여론은 의외로 차분하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겪으면서 재벌의 폐해와 전근대적인 경영행태의 문제점을 몸소 체험한데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권을 세습하고 주식회사를 개인회사처럼 운영하는 잘못된 경영행태에 대한 비판의식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신동방의 미도파에 대한 적대적 M&A를 비난했던 전경련도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위해서라면 M&A도 불가피하다는 긍정적인 입장으로 바뀌고 있다.

더욱이 소액주주들이 뭉쳐 적대적 M&A에 가세했다는 점에서 여론의 지지까지 받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조광페인트와 대한방직 경영권 공격에 나선 공격자측은 모두 '소액주주의 연합체'임을 강조하고 있다. 공격자측은 대주주의 전횡에 맞서 그 동안 제대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 소액주주들이 뭉쳐 부실경영을 단죄하려 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웠고 이런 명분은 적지않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울러 이번 적대적 M&A는 대부분 기업과 기업과의 싸움이었던 것과 달리 일반 주주들, 즉 회사경영에 전혀 참여하지 않던 개인주주들이 경영권 인수에 나선 점도 과거의 사례와 다르다. 또 공격자측이 단독 주총을 한 뒤 바로 변호사를 앞세워 기자회견을 열고 적법함을 강조하는 모습에서 주총싸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다각적인 법률적 검토가 있었음도 엿보인다.

조광페인트와 대한방직에 대한 적대적 M&A가 어떻게 결론날 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하고, 최악의 경우 법정에서 판가름나겠지만 사회분위기가 바뀌고 정부도 M&A를 활성화할 계획이어서 앞으로 적대적 M&A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김현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