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업체인 E사는 지난해부터 해외 대리점과 계약을 맺고 절전 관련 제품을 수출하고 있지만 중국 시장에서 똑같은 제품이 공공연히 판매되는 바람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 알아보니 중국의 한 에이전트가 E사의 제품을 멋대로 모방해 만든 제품으로 독자적인 영업활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초 계약서에는 지식재산권(IP)과 관련된 항목이 부실하게 작성돼 있다 보니 마땅한 제재방법을 찾지 못해 속앓이를 하고 있다. 최근 해외에서 국내 기업을 겨냥한 특허침해가 속출하고 이에 따른 지재권 분쟁이 급증하면서 효과적인 지재권 보호 및 권리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외국 기업이 과거와 달리 국내 중소기업을 타깃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부쩍 늘어나 해외 시장 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 특허청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2009년까지 국내 기업 중 22.1%가 국내외에서 지재권 침해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침해를 당한 기업의 74.4%는 매출액이 줄어들었으며 5억원 이상 매출이 감소한 기업도 21.3%에 이르고 있다. 지재권 침해 사례는 최근 2년 사이 급증하고 있어 특허문제가 한국 기업을 견제하기 위한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대다수 중소기업은 기술보호를 위해 변변한 방패조차 갖추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지재권 보호와 관련해 전혀 예방활동을 하지 않는 기업이 전체의 37.3%에 달할 정도다. 기술보호와 관련한 문제 못지 않게 기술을 해외에서 제대로 권리화하지 못해 지재권 분쟁에 휘말리는 등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발광다이오드(LED) 전문기업인 서울반도체는 세계 1위인 일본 니치아사와의 소송으로 3년 넘게 글로벌 특허분쟁에 시달리면서 5,000만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는 바람에 한때나마 해외 시장 공략에 발목을 잡혔다.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 간의 특허분쟁 발생 건수는 2004년 43건에서 지난해 134건으로 급증했으며 이 같은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해당 기업이 국제특허분쟁을 외부에 밝히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 실제 발생 건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상당수 중소기업은 지재권 분쟁에 대한 정보와 경험ㆍ자금력이 부족한데다 일부 업체의 경우 앞으로의 분쟁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대응전략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서비스분야에서 글로벌 3위권인 C사는 업계 1위인 업체가 특허 분쟁을 통해 경쟁사를 파산시키거나 인수하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다음 분쟁 대상이 될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분쟁 발생시 대응할 수 있는 단계별 매뉴얼조차 보유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야 IP전문가를 통해 기본적인 매뉴얼과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중소기업 간 지재권 분쟁소송에 밝은 한 변리사는 "지재권 분쟁 대응을 위한 정보제공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고 중소기업이 지재권 관련 이슈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전문인력 지원 및 전문가 매칭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최근 민간 차원의 대응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범정부 차원의 다각적인 지원책을 마련하는 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특허청은 최근 무역협회와 국내 수출기업의 특허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업무협약을 맺고 특허권 보호활동에 나서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고정식 특허청장은 "지재권 문제가 발생하면 기업경영 및 수출전략 전반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며 "수출기업의 취약한 대응 역량을 고려해 정부 차원에서 사전에 리스크를 분석하고 수출단계별로 지재권 체크포인트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는 기업의 지재권 보호와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 지식재산정책을 새로 수립하고 관련법안 마련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호원 지식재산전략기획단장은 "국무총리실에 설치된 지식재산정책협의회를 중심으로 지식재산정책의 틀을 새로 짜고 있다"며 "지식재산기본법안을 마련해 16일 입법예고하고 중장기 지식재산기본계획 수립을 위해 관계부처 및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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