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인터넷라이프] 한국PC 인텔중독증
입력1999-09-10 00:00:00
수정
1999.09.10 00:00:00
문병도 기자
컴퓨터를 조금이라도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런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사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인텔 칩(CPU·중앙처리장치)을 쓰지 않은 컴퓨터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1,000달러 미만의 저가 PC시장에서 인텔의 시장 점유율은 50%를 밑돈다. 최근 미국의 한 시장조사기관인 앨리슨 보스웰 컨설팅(ALLISON BOSWELL CONSULTING)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저가 PC시장에서 인텔은 44.4%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그 뒤는 AMD사의 CPU가 42.5%로 인텔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사이릭스 제품도 13.1%에 달한다.
그러나 한국은 딴 판이다. 컴퓨터를 내놓은 매장 어느 곳을 뒤져도 AMD나 사이릭스 칩을 장착한 PC를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의 PC 소비자들은 CPU를 선택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박탈당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호환 칩(인텔 칩을 대체하여 사용할 수 있는 CPU)을 국내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국내 PC업체와 인텔은 이같은 질문에 인텔 칩이 호환 칩에 비해 성능이 우수하다고 설명한다. 일면 그럴듯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다른 원인이 있다.
가장 큰 요인은 한국 특유의 시장상황. 미국 등 선진국은 양판점을 중심으로 PC시장이 형성돼 있다. 반면, 한국은 대리점 위주다. 삼성전자만 해도 전국에 1,000개가 넘는 대리점망을 가지고 있다.
대리점 위주의 영업은 고가 PC로 이어졌다. 대리점에 판매 마진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디리점의 마진은 대략 PC값의 30% 수준. 미국의 양판점보다 3분의 1 이상 높다. 물론 컴퓨터업체의 몫도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컴퓨터는 150~300만원의 몫돈을 줘야 했을 만큼 국내 PC값은 비쌌다. 최근 100만원이 안되는 제품도 나왔지만 외국에 비해 여전히 비싸다.
컴퓨터는 「고가」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보니 당연히 좋은 칩을 써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했다.
모든 하드웨어 사양이 같고 CPU만 다르다면 소비자들은 인텔 칩을 장착한 PC를 고를 것이다. 호환 칩을 넣은 PC가 10만원 정도 싸도 인텔을 선택한다. 200만원에 10만원은 껌값(?)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결국 인텔 칩은 좋고, 호환 칩은 질이 낮다는 명확한 선이 소비자들에게 통념처럼 그어져 버렸다. 성능 차이는 크지 않지만, 이미지는 엄청난 격차로 벌어진 것이다.
PC업체와 인텔과의 밀월관계도 작용한다. PC업체는 호환 칩보다 고작 몇 만원 비싼 인텔 칩을 쓰면서 PC값은 수십만원 높게 매겨 왔다.
인텔도 PC업체가 광고 등 마케팅을 하는데 드는 비용중 일부를 지원, 자사 칩을 쓰도록 유도하고 있다. PC 인쇄광고를 보면 어김없이 인텔 로고가 등장한다. TV 광고에서는 로고음과 함께 「인텔 펜티엄프로세서」라는 건장한 남성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여기에는 「시장발전기금」(MDF·MARKETING DEVELOPMENT FUND)이라는 애매한 수사법으로 포장된 인텔의 독점 전략이 숨어 있다. 사실 「시장 발전」보다는 「인텔 발전」의 의미가 더 강하다.
MDF를 통해 인텔은 PC업체 광고비중 무려 30~70%를 지원한다. 인텔은 이를 통해 국내 컴퓨터업체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었다. 또 있다. 제품 포장용 박스에 인텔 로고를 넣거나 인텔 칩을 장착한 PC를 개발할 때도 적지 않은 돈을 지원한다.
인텔과 PC업체의 밀착은 소비자들에게 「최면효과」를 발휘했다. PC는 「당연히 비싼 것」으로 만들었다. 「CPU=인텔」이라는 등식도 이렇게 형성됐다.
결국 컴퓨터업체들은 인텔의 「당근」에 취해 인텔 칩만 쓴다. 소비자들은 호환 칩을 장착한 컴퓨터를 사고 싶어도 그런 PC를 구경조차 할 수 없다.
인텔은 올 상반기에만 138억달러의 매출에 37억달러의 순익을 냈다. 순익률이 26%에 육박한다. 웬만한 소프트웨어업체 수준이다. 제조업체가 이처럼 엄청난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은 독점적인 지위 때문이다. 물론 이 수익의 대부분은 소비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왜곡된 시장구조를 단시간에 바로 잡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소비자가 호환 칩을 정확히 평가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인텔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충고다.
얼마전 AMD는 인텔보다 성능이 뛰어난 애슬론 프로세서를 발표했다. 애슬론은 최고 속도가 650㎒로 인텔의 펜티엄Ⅲ보다 50㎒ 빠르다. 또 CPU와 칩셋간의 프론트 사이드 버스(FSB)속도가 200㎒로 인텔 제품보다 2배 빠르다. 전문기관 평가결과 부동 소수점처리(연산능력), 3차원 그래픽처리 기능에서도 AMD제품은 펜티엄Ⅲ보다 30~50%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아무리 인텔보다 우수하고 값싼 CPU가 나와도 우리 소비자들은 「대안」을 선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독주체제는 시장의 건전성을 해칠 수 밖에 없다. 과연 무엇이 「시장발전」을 위한 길인가.
문병도기자DO@SED.CO.KR
오늘의 핫토픽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