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은 지난 2005년 말 도입돼 올해로 10년을 맞는다. 역사는 짧지만 적립금 규모는 급신장해 올해 말에는 100조원, 오는 2020년에는 200조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퇴직연금 자산운용 방식은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이 있는데 먼저 DB제도에 대해 살펴보자.
DB제도는 기존의 퇴직금제도와 비슷해 근로자가 퇴직하면 퇴직 직전 평균급여와 근속기간을 곱해 퇴직연금을 받는다. 관리는 회사가 전적으로 맡으며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의 약 70%가 DB로 운영된다.
DB로 운영되는 퇴직연금은 현재 97.7%가 예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 상품으로 운용된다. 1년 정기예금 금리가 2%대인 현재의 금융환경에서는 회사가 근로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해줄 재원을 마련하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앞서 DB제도는 기존 퇴직금제도와 유사하다고 했지만 2011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된 국제회계기준(IFRS)으로 회사가 퇴직금 지급을 위해 적립하는 '퇴직급여부채' 평가에 변화가 생겼다. 기존에는 근로자들이 현재 시점에서 일괄 퇴직할 경우 발생하는 금액을 퇴직급여부채로 설정했다. 바뀐 기준으로는 근로자들의 앞으로 근무기간까지 감안해 현재 가치로 환산한 금액을 퇴직급여부채로 설정한다. 또 회사가 법적으로 적립해야 하는 퇴직급여부채의 최소비율도 기존의 60%에서 2014년에는 70%, 2016년에는 80%까지 상향된다. 따라서 기업들은 재무관리 측면에서 부채증가 압력은 높아지고 부채와 자산의 간극을 메워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기업들은 서둘러 합리적인 자산운용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셈이다.
금융투자협회와 한국투자증권이 최근 기업체 퇴직연금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도 이 같은 재무관리 리스크를 인식하고는 있다. 퇴직연금 자산운용 개선방안으로 사내 유관부서와 사외 전문가 등으로 구성하는 '투자위원회'와 투자목표 및 자산배분 등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투자정책서의 필요성에 크게 공감(각각 68.2%, 78.0% 찬성)하고 있다.
선진국에 보편화된 투자정책서(Investment Policy Statement·IPS)는 투자위원회가 투자 목표 및 목표수익률을 설정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자산배분·평가방법 등을 정한다. 국내 DB제도에서 실적배당 상품에 대한 투자비중은 2%에 불과하지만(투자한도 70%까지 허용) IPS가 있으면 운용담당자는 IPS 지침에 따라 최선의 운용방법을 찾을 것이고 실적배당 상품을 포함한 다양한 자산배분이 가능해진다.
지금은 대부분 차량에 내비게이션이 달려 있다. IPS는 퇴직연금 자산운용에서 내비게이션 역할을 한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최적의 경로(자산배분)를 통해 IPS가 유도하는 데로 운용에 집중하면 된다. 지금의 퇴직연금 자산운용은 최적의 경로를 찾지 않고 하나의 차선(원리금 보장 상품)에서 저속으로 주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퇴직연금 자산운용에 내비게이션을 달고 올바른 길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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