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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에 이어 이번에는 코오롱이 미국 기업과의 특허소송에서 일방적으로 패하면서 미국 특허패권주의가 점점 노골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판매금지 기간을 무려 20년으로 한 것도 그렇고 코오롱에 유리한 증거와 증인 등을 배제한 것 등이 해도 너무 한다는 것이 업계와 통상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국내 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 기업과 법원이 힘을 합쳐 경쟁국과 기업들에 무언의 경고를 보냈다고 해석할 수 있다"며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미국의 자국기업 감싸기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삼성 vs 애플 소송'과의 닮은꼴=이번 코오롱과 듀폰의 아라미드 소송은 지난주 평결이 내려진 삼성전자와 애플의 스마트폰 특허소송과 여러모로 닮아 있다.
우선 두 소송 모두 미국 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평결을 내렸다. 지난주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새너제이 법원)의 배심원단은 삼성전자가 애플의 디자인 특허와 상용 특허를 침해했다며 총 10억5,185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반면 미국 배심원단은 삼성전자가 주장한 애플의 특허침해에 대해서는 단 한 건도 인정하지 않았다.
소송의 진행과정에서도 미국 법원은 듀폰∙애플 등 자국기업들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 갔다. 새너제이 법원의 루시 고 판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삼성전자 측이 제시한 증거채택 또는 증인신청을 모두 거부했다. 애플이 소니 휴대폰 디자인과 유사한 디자인을 논의했다는 내용 등이 담긴 증거는 전혀 채택되지 않았다.
이러한 분위기는 코오롱과 듀폰의 소송과정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코오롱의 변호를 맡은 제프 랜들 변호사는 "이번 재판에서 코오롱에 유리한 증거와 증언의 불공정한 배제, 재판 절차적 및 관할권상 오류 등 많은 잘못이 있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아울러 코오롱은 지난 1979년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고(故) 윤한식 박사와 함께 국산 아라미드 기술을 개발해왔고 이 연구성과는 1987년 세계적인 권위의 과학 전문지 '네이처'에 게재됐다.
또 듀폰이 1986년 유럽 등에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1991년 12월 유럽 항소심재판소 최종 판결에서 윤 박사의 연구가 독창적인 것임이 인정됐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을 담은 증거들은 재판에서 결정적인 증거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배심원단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와 애플 간 소송의 배심원단에는 엔지니어가 포함돼 있었지만 삼성전자 측이 제시한 통신특허 기술을 이해할만한 수준의 전문가는 전무했다. 코오롱과 듀폰의 소송전에서도 아라미드와 같은 첨단 화학섬유 분야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배심원은 없었다.
심지어 배심원 한 명은 법률공방이 진행되는 동안 자주 졸았다는 이유 등으로 배심원 자격이 박탈돼 나머지 8명이 평결을 내리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듀폰이 주장하는 영업비밀은 이미 다 공개돼 알려져 있던 것"이라는 코오롱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담당판사인 로버트 페인 판사는 과거 로펌 재직시절 듀폰을 위해 일했다. 또 배심원단이 듀폰의 최대 사업장이 있는 리치먼드 주민들로 구성된 점 등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거세지는 한국 기업에 대한 견제구=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에 이어 코오롱∙듀폰의 소송에서도 드러났듯이 최근 세계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 기업에 대한 견제가 한층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특히 한국을 타깃으로 하는 외국기업들 가운데는 무차별적으로 특허를 사들인 뒤 소송을 걸어 사용료를 벌어들이는 이른바 '특허괴물'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최근 지적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외국기업들이 제기한 소송의 상당수는 특허 또는 영업비밀 침해 혐의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결국 외국기업이 한국 기업을 견제하기 위해 처음부터 무리하게 소송을 제기하거나 악의적으로 사실을 왜곡했기 때문이다.
듀폰이 코오롱을 상대로 제기한 아라미드 섬유에 대한 영업비밀 침해소송 역시 거대한 글로벌 기업이 미국시장의 지배력을 유지하고자 지식재산 관련 소송을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실제로 듀폰은 코오롱이 30여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2005년 아라미드 섬유 생산을 시작하자 영업비밀 침해소송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2009년 소송을 제기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현재 일본의 데이진과 함께 전세계 아라미드 섬유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듀폰이 코오롱의 시장진입을 막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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