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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명약 우리음악/한명희 국립국악원장(로터리)
입력1997-10-11 00:00:00
수정
1997.10.11 00:00:00
한명희 기자
대만의 국민학교 국어책에 있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성급한 농부가 논의 벼가 더디 자란다고 매일 나가서 볏대공을 조금씩 끌어올렸다. 며칠 후 벼가 많이 자랐으려니 기대하고 나가보니 모두들 누렇게 죽어 있었다. 만만디로 통칭되는 중국인 중에도 성실이 꽤나 급한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결코 급해서 좋을 것이 없다. 당장은 효율적으로 목적을 이룬 듯싶겠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득될 게 없을 뿐 아니라 큰 손실일 때가 허다하다. 저간의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이같은 사실을 통감할 수 있다. 몇초라도 빨리 가려고 허둥대는 교통현장의 조급함이 그렇고, 금 나와라 뚝딱 얼른얼른 지어대는 건축현장의 부실이 그러하며,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교육현장의 미봉책들도 그러하다.
급해서 좋을 게 없는 것 중 하나에 요즘 젊은 세대들의 애정관도 빼놓을 수 없다. 초고속시대라서인지 사랑도 초음속이다. 그저 전화 한통으로 만나고 전화 한통으로 헤어지는 시대다. 맘에 드는 대상일수록 감히 접근도 못한 채 먼 발치로 가슴만 졸이며 몇년을 뜸들이기가 예사이던 우리 세대의 안목에서는 그야말로 상전벽해요 천지개벽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미학자 이마미치(금도우신)는 그의 책 「애론」에서 이를 두고 즉석사랑(Instant Love)이라 했다. 얼른 보면 나쁠 게 없는 한 시대의 풍조라고도 하겠다. 그러나 길게 보면 결코 이로울 게 없다. 이혼율이 급증해가는 요즘의 세태도 결국 이같은 풍조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빨리 끓는 냄비가 금방 식듯이 속성으로 익은 사랑이 길게 갈 리 만무하고, 성급하게 만난 사랑이니 갖가지 갈등과 역경을 참아내고 극복할 인내심이 수반될 리 만무하다.
비단 애정세계의 일만이 아니다. 사회구조의 속성상 모든 것이 숨가쁘게만 돌아간다. 피치 못할 상황이기도 하겠지만, 부정적인 측면이 여간 아니다. 슬기로운 보완책을 찾는 지혜가 절실하다. 현대인의 정신적 병리를 상담하는 미국의 저명한 카운슬러 노먼 필은 급한 일로 엘리베이터 앞까지 뛰어가다가도 불현듯 그 앞에 서서는 다음 승강기를 가다린다고 했다. 굳이 대기만성이 아니더라도 무쇠속을 달구는 느긋한 여유로움과 참을성을 배워야겠다. 그같은 대안으로 장강의 물결처럼 유장하게 흘러가는 수제천과 같은 우리 음악을 늘 벗삼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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