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을 포함해 지구에 현존하는 모든 생명체는 하나의 단세포 생물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지구 생명체들의 모태인 이 최초의 원시 생명체가 과연 유기물과 무기물이 뒤섞인 바다에서 ‘저절로’ 탄생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오래된 의문은 아직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리토판스퍼미아(lithopanspermia) 가설은 바로 생명탄생과 관련한 진화론의 이러한 허점을 메우기 위해 등장했다. 한 행성의 생명은 이미 생명체가 존재하는 또다른 행성으로부터 전파된 것이라는 것이 이 가설의 핵심. 고도로 발달된 외계문명이 유전자조작 등의 방법으로 지구에 생명체를 이식했다는 황당한 음모론과 일정부분 닮아있는 듯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생명체가 탄생한 것으로 밖에는 설명되지 못하는 진화론의 태생적 의문을 풀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전문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상태다. 얼마전 유럽우주국(ESA)는 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한 실험 하나를 실시했다. 포톤-M3(Foton-M3)로 명명된 직경 2.1m, 중량 2.3톤의 무인우주선에 단세포 생물인 남조류(cyanobacteria)를 담아 우주로 보낸 뒤 이를 지구로 재 진입시키는 것이 바로 그것. 만일 이 남조류가 지구 재진입 시의 초고열을 견뎌내고 살아남는다면 리토판스퍼미아 가설이 단순한 추측을 넘어 이론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는 중요한 실험이었다. 이처럼 중대한 임무를 띤 포톤-M3는 지난해 9월 러시아의 소유즈-U 로켓을 이용,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센터에서 발사됐으며 12일간 현무암과 화강암에 붙은 남조류를 우주 방사선에 노출시킨 다음 운석이 떨어지는 것과 동일한 속도로 대기권을 통과해 지구로 귀환했다. ESA의 확인 결과, 기대와 달리 남조류는 고열에 모두 타버렸다. 하지만 ESA측은 이번 실험만으로 외계 생명체의 지구 유입을 불가능한 것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이번 실험에 참가한 ESA의 르네 디멧 박사는 “마찰열이 포톤-M3 내부로 너무 깊숙이까지 침투, 실제 운석에 있었을 때 보다 높은 열기에 남조류가 노출됐다”며 “어느 온도에서 남조류가 사멸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리토판스퍼미아 가설의 가능성은 아직 열려있다”고 설명했다. 르네 박사는 포톤-M3 실험이 이렇게 아쉬움을 남긴 채 마무리되기는 했지만 최소한 외계생명체 유입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단초를 열어 놓았다는 점에서 향후 추가연구를 통해 모든 의문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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