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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방교육재정의 '블랙홀'로 불리는 무상급식을 손보기로 한 것은 보편적 복지에서 선별적 복지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지방재정이 이미 한계에 이르러 기존 보편적 복지의 틀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무상급식은 무상교육인 누리과정(만 3~5세 공통 교육과정)과 함께 지방교육재정 악화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 공약인 누리과정과 고교 무상교육은 재정조달계획이 세수부족 등으로 차질을 빚으면서 진통을 겪고 있다. 고교 무상교육은 내년 예산에 한 푼도 반영되지 않는 등 사실상 임기 내 실현이 어려운 것으로 보고 있다. 누리과정 역시 내년 예산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가 국회 심의 과정에서 '목적예비비' 명목으로 5,064억원이 배정됐다. 사실상 우회지원으로 그나마 지방교육청의 숨통이 트였다는 평가지만 아직도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25일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무상급식에 들어간 돈은 2조6,239억원으로 지난 4년간 무려 5.4배 증가했다. 무상급식 예산은 2010년 4,845억원, 2012년 1조9,450억원, 2013년 2조4,000억원으로 급증했다. 현 추세대로라면 무상급식에 들어가는 예산은 오는 2020년 약 4조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무상급식 예산은 조례 등 별도의 합의를 통해 지방자치단체별로 교육청과 분담비용을 결정하고 있다. 시행령에 근거를 둔 누리과정 등 무상교육과 달리 지자체가 알아서 결정할 수 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각 시도마다 지원 대상에 차이는 있지만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도입한 상태다.
무상급식의 혜택을 받는 학생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10년 전체 학생의 19%인 138만명이 지원을 받았으나 2011년 327만명(46.8%), 2012년 397만명(56.8%), 2013년 437만명(67.4%), 올해는 445만명(69.1%)으로 늘어났다. 전국 초중고교 무상급식 예산은 올해 기준으로 2조6,239억원에 이른다. 17개 시도 평균 기준으로 교육청이 59.7%(1조5,666억원), 광역지자체 16.8%(4,407억원), 기초지자체가 23.5%(6,166억원)를 부담하고 있다. 대부분의 시도는 소득에 상관없이 무상급식 수혜 대상을 확대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문제는 무상급식이 전면 시행되면서 지자체들이 심각한 예산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전국 244개 기초자치단체 중 32%인 78개 시군구는 자체 수입으로 인건비도 충당하지 못할 정도로 재정자립도가 낮은 상황이다. 무상급식을 포함한 소위 무상 교육정책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무상급식에 돈이 들어간 만큼 교육의 질을 높이거나 저소득층에 지원하는 예산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문정림 새누리당 의원실에 따르면 시도교육청의 무상급식 예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학교시설 예산은 크게 줄어들었다. 학교시설 예산은 2010년 5조4,830억원에서 올해 3조7,508억원으로 급감했다.
반면 무상급식 예산은 같은 기간 5,630억원에서 2조6,568억원으로 늘었다. 학교시설 예산이 4년 동안 1조7,322억원 줄어든 반면 무상급식 예산은 2조938억원 불어난 것이다.
지방교육청의 예산이 늘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튀어나오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무상급식은 누리과정 논란만큼이나 뜨거운 감자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무상급식 예산을 경남도교육청에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무상급식 논란은 전국 지자체와 교육청의 갈등으로 번지며 현재 진행형이다.
무상급식은 의무교육과 같으므로 조건이나 자격의 차등 없이 전면 무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과 지방교육재정의 어려움이 심각한 만큼 대상자를 저소득층으로 한정하자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한편 11월 한국갤럽이 전국 성인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6%가 '재원을 고려해 소득 상위계층을 제외한 선별적 무상급식을 해야 한다'고 응답한 반면 '소득에 상관없이 전면 무상급식을 계속해야 한다'는 응답은 31%에 그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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