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농진흥회, 서울우유협동조합 등 국내 유가공업계가 '원유(原乳)' 감산에 돌입했다. 지난 2003년 이후 11년만이다. 낙농가의 소득 감소를 우려해 버티고 버텼지만 소비는 줄고 있는데 반해 공급은 오히려 늘고 있는 상황이 한계에 직면하자 결국 고육지책(苦肉之策)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낙농가의 반발이 심해 원유 감산을 둘러싼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5일 유가공업계에 따르면 낙농진흥회는 최근 원유 감산 방안을 확정하고 이달부터 시행하고 있다. 방식은 농가마다 배정한 쿼터 물량의 일정 부분(3.47%)을 정상가의 10%에 사들이는 것이다. 예컨대 그동안 1만ℓ의 원유를 생산하는 농가의 경우 9,653ℓ는 기존 가격인 ℓ당 940원에, 나머지는 94원에 매입한다. 낙농진흥회가 정상가를 크게 밑도는 값에 원유를 사들여 농가의 자율적인 생산 감축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대상 농가는 낙농진흥회에 원유를 공급하는 1,400여 농가로, 기간은 내년 12월까지다. 낙농진흥회가 원유 감산에 나선 것은 지난 2003년 이후 처음이다.
낙농진흥회 관계자는 "올해 예상 원유 생산량은 총 220만6,000톤으로 따뜻한 날씨 탓에 작년보다 20만톤이 늘었다"며 "이 중 잉여 생산량만 11만여톤에 달해 감산 카드를 꺼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행 기간 중 공급 과잉이 누그러지면 다시 매입가를 정상화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낙농진흥회는 원유·유제품 수급조절, 가격안정, 유통구조 개선, 품질향상 등을 목적으로 지난 1999년 설립돼 남양유업·매일유업 등 유가공업체에 원유를 공급하고 있다.
국내 최대 원유 생산단체인 서울우유협동조합도 감산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중국당국의 보호조치로 수출길조차 막힌 상황에서 농가의 입장만을 앞세워 팔리지도 않는 우유를 계속 생산할 경우 업계 전체에 피해가 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와관련,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최근 이사회에서 감산 방안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은 오는 22일 총회에서 이에대한 시행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서울우유협동조합은 국내 최대 시유(젖소에서 짜낸 우유를 가공, 포장해서 시중에서 파는 우유) 공급처로, 하루 생산량만 2,000ℓ에 달한다. 이는 전체 물량(5,000ℓ)의 40%가량이다.
이처럼 국내 원유 생산량의 70% 가량을 취급하는 양 단체가 원유 감산에 나선 것은 대체 음료와 출산 감소 여파로 우유 소비가 줄어든 반면 2008년 우유파동으로 낙농가의 원유 생산 쿼터가 늘어나면서 공급량이 초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유가공업체 관계자는 "낙농가를 대변하는 한국낙농육우협회가 낙농진흥회 감산 결정에 반발하며 회장 퇴진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는 등 원유 감산을 둘러싼 갈등이 커지고 있다"며 " 낙농가로서는 수익과 직결되는 부분이어서 감산 방안을 제대로 시행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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