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당초 우리 정부의 재협상 불가 원칙과 달리 ‘재협상 불가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미 행정부가 무역촉진권한(TPA) 연장을 조건으로 미 의회의 ‘신통상정책’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협상이 이뤄질 경우 올 하반기까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오는 6월까지 내년도 예산안에 한미 FTA 피해예산을 반영해야 하는 우리 정부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지는 등 재협상 개시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재협상, ‘고무줄’ 협상 가능성=미 행정부와 의회가 (USTR)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 (새로운) 노동ㆍ환경기준과 관련한 협상을 요구할 것”. 여기에다 미 의회는 한미 FTA 협정문 가운데 자동차 조항 등의 변경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서한을 행정부에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하원 세출위원회 찰스 랭글 위원장 등이 10일 미 행정부에 보낸 서신에 따르면 페루ㆍ파나마와의 FTA 합의안 중 수정이 필요한 부분은 노동ㆍ환경ㆍ지구온난화ㆍ지적재산권ㆍ정부조달ㆍ투자 조항 등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세부적인 변경 요구사항이 적시돼 있지 않은 상태다. 다만 ‘주석(note)’을 통해 자동차 조항 등의 수정이 필요하다는 점만 지적했다. 이에 따라 미국 측의 공식적인 재협상 요청이 통보될 경우 지금까지 ‘재협상은 없다’는 원칙만 되풀이했던 우리 정부도 막무가내로 재협상을 거부하기는 힘들어졌다. 특히 국내 통상 전문가들은 6월30일 만료되는 TPA를 다시 얻어내기 위해 미 행정부가 의회의 신통상정책을 받아들인 만큼 이르면 5월 중 미국 측과의 재협상이 시작된다 하더라도 6월30일 일정에 관계 없이 재협상이 길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재협상이 (TPA 만료시점인) 6월 말 이후에도 계속될 가능성이 커 우리 정부는 매우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고 말했다. 재협상 기간이 장기화하고 재협상의 범위도 확대되는 매우 껄끄러운 국면이 예고된다는 지적이다. ◇재협상 개시와 함께 정부 FTA 관련 일정 차질 불가피=미국과의 구체적인 재협상 대상 분야는 미국 측의 정식 통보가 있어야 알겠지만 문제는 재협상 자체가 성사된다는 사실만으로 우리 정부가 상당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정부의 한 관계자는 “FTA 협상의 큰 틀을 흔들지 않은 선에서 미국측 요구사항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며 “현재 알려진 내용으로만 보면 별 문제는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재협상이 장기화하고 재협상 범위도 확대될 가능성이 커 당장 우리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 일정에 큰 차질이 일 것으로 보인다. 6월 말까지 각 부처가 FTA 피해지원 예산을 산정, 기획예산처에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재협상 과정에서 수정이 예상되는 일부 사항의 경우 우리 사회에 끼칠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예컨대 민주당이 특히 정책의 무게를 두고 있는 노동 분야의 경우 재협상 과정에서 ▦노동자 결사의 권리 ▦단체교섭권 ▦강제노동 금지 ▦어린이 노동 금지 ▦고용차별 철폐 등 98년 발표된 국제노동기구(ILO)의 5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특히 단체교섭권과 결사권은 국내 공무원노조 허용 문제와 직결돼 있는 사안”이라며 “재협상 과정에서 어떤 방향으로 합의문이 수정되느냐에 따라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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