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자진 상장폐지를 위한 공개매수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이를 추진하는 최대주주만큼이나 공개매수 성공을 손꼽아 기다리는 곳이 있다. 바로 증권사들이다. 비상장사들이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때 증권사들이 상장 업무를 주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장사들이 제 발로 증시를 떠날 때도 증권사들은 공개매수 업무를 대행하는데 보통은 공개매수 금액의 0.3%에서 많게는 2% 이상의 짭짤한 수수료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1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최대주주가 공개매수를 추진한 12개 상장사 가운데 7개는 자진 상장폐지를 위해 공개매수에 나선 기업들로 집계됐다. 이들 가운데 지난 4월 가장 앞서 공개매수를 진행한 한국개발금융은 청약 주수가 모집 예정 주수의 30% 수준에 불과해 자진 상장폐지 시도가 불발됐지만 웨스테이트와 넥스콘테크, 티브로드도봉강북방송, 한빛방송 등은 90% 이상 청약률로 무난하게 상장 폐지 절차를 밟게 됐다.
자진 상장폐지 추진을 위한 첫 단추인 공개매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면 이들 기업을 비상장의 길로 이끄는 역할을 맡은 증권사들은 계약상 정해진 수수료를 지급받게 된다. 이는 공개매수신고서 등 당국에 제출하는 서류 작성, 주주별 청약 계좌 관리, 결제 대행 등의 업무를 제공하는데 대한 대가다.
보통 공개매수는 수수료율이 IPO나 M&A 주관수수료만큼 높지 않아 기업금융본부에서 주력으로 삼는 서비스는 아니지만 최근처럼 IPO 시장이 위축된 상태에서 자진 퇴출 기업들만 늘어나는 시기에는 쏠쏠한 수익원이 되기도 한다. 한 대형 증권사의 M&A부 관계자는 “평소 해당기업과 IPOㆍ증자ㆍ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인연이 있는 증권사들이 공개매수 주관을 위한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분야 역시 증권사들의 경쟁이 치열하다”며 “다만 다른 기업금융분야와 달리 공개매수의 경우 전국 지점망을 갖춘 국내 증권사들간 경쟁으로 국한된다”고 설명했다.
IPO나 유상증자, 블록딜 주관 수수료가 천차만별이듯 공개매수 수수료 역시 기업별로 크게 다르지만 보통은 공개매수 금액의 0.3% 이상인데 규모가 수천억 단위로 커지면 0.1% 미만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올해 공개매수를 추진한 기업 중 가장 높은 수수료율을 내건 상장사는 서울팔래스호텔을 운영하는 기업인 웨스테이트로 공개매수 규모 14억원에 2.8%의 수수료율을 책정해 사무취급을 맡은 이트레이드증권과 대신증권이 4,000만원을 챙겼다.
또 올 들어 공개매수에서 가장 짭짤한 수익을 올린 증권사는 대우증권으로 한국개발금융, 티브로드도봉강북방송, 한빛방송 등의 상장폐지를 위한 공개매수를 주관했고 지난 9일부터 SK그룹 계열사인 코원에너지서비스의 공개매수를 주관하고 있다. 코원에너지서비스의 공개매수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대우증권은 총 4건의 공개매수로 6억원 안팎의 수수료 수익을 낼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삼성증권은 국민연금의 불참선언으로 한라공조의 공개매수가 취소되면서 10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수수료를 벌 기회를 놓쳤다. 보통 청약 미달로 공개매수에 실패할 경우 미리 정한 최저 수수료를 받지만 아예 못 받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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