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농협은행이 '신용등급 리스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이 '농협은행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축소될 수 있다'며 현재 신용등급을 조정할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어서다.
10일 농림수산식품부와 농협 등에 따르면 세계적인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지난달 농협은행의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강등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피치가 농협은행에 부여한 신용등급 'A'는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 'A+'보다 한 단계 낮은 수준이다.
피치는 '사업구조개편으로 농협중앙회 내의 신용사업 부문이 농협은행으로 분리돼 정부의 지원이 끊길 수 있다'는 점을 등급 강등의 배경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치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미리 파악한 정부는 급히 피치의 홍콩 사무소에 담당자를 보내 "사업구조 개편 이후에도 각종 농업 관련 정책자금이 농협을 통해 집행되는 등 실질적인 변화는 없다"며 피치를 설득, 등급 하향조정을 막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피치는 농협은행의 신용등급을 현행 'A'로 유지하는 대신 등급 전망만 '긍정적'에서 '안정적'으로 한 단계 낮췄다. 농협 사업구조 개편이 금융자회사의 안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를 완전히 떨쳐내지는 않은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당초 농협은행의 신용등급을 국가신용등급과 같은 'A+'로 올리는 게 목표였으나 오히려 반대로 강등될 뻔했다"며 "농협 신용등급이 'A'에서 'A-'로 내려갔다면 농협이 해외채권 금리가 1%포인트가량 올라가면서 연간 100억원 이상의 해외자금 조달 비용이 추가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협은 매년 1조원가량의 해외채권을 발행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이 남아 있는 문제는 피치의 등급전망 하향 조치가 무디스, 스탠더드앤푸어스(S&P)의 등급 평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무디스와 S&P는 현재 농협은행의 신용등급을 국가신용등급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지만 언제든지 등급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 정부 관계자는 "무디스와 S&P는 지금까지 공공기관 평가를 담당하는 팀이 농협은행 등급을 매기고 있지만 내년부터는 일반 금융기관 담당팀으로 이관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렇게 되면 등급 평가가 한층 엄격해져 농협은행의 신용등급 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농협중앙회 집행부가 이달 초 정부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사업구조 개편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배경에도 신용등급 강등에 대한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MOU 체결이 늦어질 경우 외부에 정부 지원이 끊기는 것으로 비쳐져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했다는 얘기다. 서규용 농식품부 장관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농협과 정부가 MOU 체결을 취소하거나 보류한다면 농협은행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엄청난 피해를 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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