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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7시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5층 그랜드볼룸. 평소 같으면 손님이 많지 않은 시간대였지만 이날은 몰려드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한국경영혁신중소기업협회(이하 메인비즈) 주관으로 매달 열리는 강연회인 '굿모닝 CEO 학습' 행사장을 찾은 700여명의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자리를 꽉 채웠기 때문이다.
특히 이날은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으로 손꼽히는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기업문화 환경이 바뀐다-지식에서 창조로'를 주제로 강연에 나선 날이어서 평소보다 200명이 더 많은 참석 인원이 몰렸다. 배치된 좌석으로는 부족해 일부 CEO들은 맨 뒤쪽에 임시로 마련된 간이 의자에 앉아 강의를 경청하는 등 열기는 대학 강의실 못지 않게 뜨거웠다.
중소기업 CEO들이 때아닌 학습 열풍에 빠져 들고 있다. 과거에도 인맥 확대와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내건 각종 강연과 학위 과정이 적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강연을 통해 기업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얻기 위한 모임이 부쩍 늘었다.
메인비즈에서 진행하는 '굿모닝 CEO 학습'에는 서울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1,000명 이상이 참석하고 있다. 지난 2011년에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참석자가 70여명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하면 비약적인 증가세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중소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이 성황을 이루는 것은 행사의 질이 과거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때문이다. 기존에는 단순한 사교 성격의 모임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실제 경영에 도움이 되는 콘텐츠가 많아지고 있다. 이날 강연을 맡은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 역시 아침 일찍부터 배움에 나서는 중소기업인들의 열기를 전해 듣고 3년 만에 조찬 강의에 직접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강연을 마친 후 서울경제신문 취재진과 만난 이 교수는 "한 달 전에 큰 수술을 마친 상태라 외부 일정을 자제했고 특히 아침 7시부터 시작하는 강연은 건강상으로 큰 부담이 되지만 중소기업인들이 이 나라의 미래라는 신념을 갖고 강연에 나섰다"며 "전에는 정부나 대기업 관계자들을 상대로 강연을 많이 해왔는데 오늘 강연을 해보니 확실히 중소기업 CEO들은 이른 시간임에도 강연에 집중하는 눈빛부터 여느 강연과 달라 정말 놀랐다"고 강연 소감을 밝혔다.
이노비즈협회에서 진행하는 모닝포럼 역시 최근 들어 유명세를 타고 있다. 지난 2009년 본격 시작된 이 행사는 경영 전반과 각종 중소기업 지원 정책을 결합해 매달 진행된다. 초창기만 해도 참석자가 50여명에 불과했지만 지난해부터 입소문이 나면서 150명 이상으로 늘었다. 수도권 각지는 물론 충청 등 다소 먼 지역에서 일부러 찾는 CEO들도 있을 정도다. 충남 당진에 본사를 둔 정춘실 세지테크 대표는 "모닝포럼이 시작되는 7시까지 도착하려면 새벽 5시에는 출발해야 하지만 막상 아침에 와서 다른 동료 CEO들을 보면 나도 배워야 산다는 의지가 되살아난다"며 "특히 최근 들어 경기가 전반적으로 침체되는 상황에서 신성장 동력 확보에 고심하는 대표들이 많은데 이러한 모임에서 다양한 업계 이야기와 경기 트렌드를 들으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얻을 수 있어서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강조했다.
경기도 안양에서 수중모터펌프업체인 협선공업을 운영하는 한경수 회장은 지난 18년간 매달 한 번씩 꼭 참석하는 조찬 모임이 있다. 1988년부터 한국표준협회가 운영해 온 'KSA CEO 조찬회'다. 한 회장은 "1997년 처음 조찬회원이 된 이후 18년 동안 거의 빠지지 않고 참가하고 있다"며 "CEO는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위해 최신 동향과 정보를 얻는 것이 필수인데 이런 갈증을 풀어준 것이 바로 조찬을 통한 다양한 배움의 자리"라고 말했다. 'KSA CEO 조찬회'는 324회를 넘기면서 최장수 조찬 모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 2012년부터는 대전 등 지역에서도 조찬회를 마련하면서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이러한 조찬회는 국내 유수의 기업 CEO들이 모여 최근의 트렌드를 공유하는 자리여서 조찬회의 내용을 보면 당대 경영인들의 관심사를 읽을 수 있다. 1980년대는 정부 주도의 경제성장기인 만큼 정부 정책에 대한 관심이 유독 높았다. 이에 초청 연사들도 경제나 산업 등 정책 담당 관료가 많았다. 하지만 벤처 붐이 불기 시작한 1999년~2000년 초에는 이금룡 전 옥션 대표와 공병호 전 인티즌 대표 등 벤처기업 대표들이 러브콜을 받았고 2002년 이후에는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이기태 전 삼성전자 사장 등 기업 대표들이 연사로 초청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인문학과 창조경영에 대한 CEO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김난도 서울대 교수 등 학계와 문화계 인사들이 연사로 초청돼 CEO들에게 창조적 아이디어와 경영 혁신 등에 대한 영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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