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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과 가야산 사이 해발 200m에 자리한 경상남도 거창군의 한 농가. 25일 여전히 한겨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이 곳에서는 꽁꽁 얼어 붙은 땅을 경운기 한 대가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온통 헤집어 놓고 있었다. 다음달 감자 파종을 위해 경운기를 타고 밭을 갈고 있던 농민 박태억(48)씨는 추운 날씨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만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박씨는 오는 3월 식자재유통기업 CJ프레시웨이로부터 강원도산 씨감자를 공급 받아 밭에 심고 7월에 수확하게 된다.
박씨는 "5년 전 귀농해 사과 농사를 지어왔는데 농한기를 활용해 감자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다"면서 "요즘에는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즐거워했다.
그가 지난해 난생 처음 감자농사에 뛰어들 게 된 이유는 CJ프레시웨이가 2011년 10월부터 이 지역에서 시작한 '계약재배' 사업 덕분이다.
CJ프레시웨이 계약재배란 CJ프레시웨이, 거창군 농업기술지원센터, 농민들이 함께 농산물의 품질규격과 그에 따른 수매가격을 미리 정하고 종자선정, 재배, 수확에 이르는 과정을 진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된 농산물은 CJ프레시웨이가 전량 구매해 급식장, 외식업체, 식품원료 공장 등에 공급한다. 이처럼 CJ프레시웨이의 계약재배는 여타 유통업체가 미리 수매 물량을 정하고 수확기의 시세에 따라 수매 가격을 책정하는 것과 차별화 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거창 지역의 경우 대부분의 농가가 사과, 딸기 등 과수농업과 벼농사만 짓고 월동기에는 땅을 놀리고 있었지만 CJ프레시웨이와의 계약재배 사업을 계기로 감자, 양파 등의 작물이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해 지역 농민들의 소득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거창군 농업기술지원센터 측의 설명이다.
지난해에는 8개 농가만 참여한 가운데 10헥타르(3만평)에서 감자 320톤이 수확됐으나 올해는 60여 농가가 참여했고 재배면적도 43헥타르(13만평)으로 늘어나 1,300톤의 생산량을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계약재배가 시작된 양파는 올 6월 13헥타르(4만평)에서 1,000톤이 수확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CJ프레시웨이의 '색다른 시도'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 계약재배를 통해 농민들은 수확기 작물 시세 변동의 영향 없이 농사에만 전념하며 안정된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아울러 CJ프레시웨이는 식자재 원료의 안정적인 조달 및 품질 향상, 유통단계 축소로 인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돼 '윈윈' 이라는 평가다.
양파 계약재배에 참여하고 있는 신도범(65)씨는 "농가와 협의해 종자 선정부터 재배 관리 기술적 조언까지 기술지원센터가 맡아 주고 수확기에는 품질과 무관하게 전량을 CJ 측에서 수매해가기 때문에 단일 면적당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농사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CJ프레시웨이는 계약재배 품목과 지역을 확대, 2015년까지 계약재배를 통한 식자재 원료 조달 비중을 50~60%까지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또 전라, 충청 지역 등으로 거점을 확대해 계약재배 중심으로 식자재 원료를 조달할 계획이다.
이정우 CJ프레시웨이 농산물 담당 MD(부장)는 "CJ프레시웨이 계약재배 사업에 대한 소문이 주변 농가에 널리 펴져 내년에는 참여 농가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품목과 면적이 확대돼 안정적으로 정착하면 조만간 고추도 추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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