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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건설 파산] 어떤 회사

중동신화 주역…한때 재계 5위해방 후 56년 역사속에 해방후 우리 건설산업의 역사를 대변해온 동아건설이 끝내 간판을 내리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동아는 1945년 고(故) 최준문(崔竣文)회장이 설립한 충남토건을 모태로 6ㆍ25이후 국가재건 과정 속에서 삼환기업ㆍ대림산업 등과 함께 건설3인방으로 불리며 고속성장을 거듭한 업체다. 동아건설 파산 일지 ▲ 98년 6월 채권은행 9,600억원 협조융자 마무리 ▲ 98년 5~6월 최원석회장 퇴진 및 고병우회장 취임 ▲ 98년 9월 워크아웃 1호기업 선정 ▲ 99년 1월 자본금 3대1 비율로 감자 ▲ 99년 2월 채권단, 802억원 출자전환 ▲ 99년 4월 인천매립지 6,355억원에 농업기반공사 매각 ▲ 00년 4월 채무재조정안 채권단 승인 ▲ 00년 6~7월 고병우회장 퇴진 및 최동섭회장 취임 ▲ 00년 9월 신규자금 3,409억원 지원 요청 ▲ 00년 10월30일 워크아웃 중단 ▲ 00년 11월 서울지법 법정관리 개시결정 ▲ 01년 2월6일 삼일회계법인 실사결과 발표 ▲ 01년 2월13일 동아건설, 88~97년 분식회계 사실 발표 ▲ 01년 2월22일 법원, 동아건설 재조사 명령 ▲ 01년 3월9일 회사정리절차 폐지 결정 68년에는 당시 국영기업이었던 대한통운을 인수, 국내 최대의 육상물류업체로 키웠으다. 동아가 외적인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83년 리비아 대수로 1단계공사를 수주하면서다. 당시 37억달러로 단일 토목공사로는 세계 최대규모인 대수로공사 수주는 동아건설이라는 이름을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으며 이후 58억달러의 대수로 2단계 공사마저 따내면서 일약 재계랭킹 5위의 대그룹으로 성장했다. 동아건설의 위기가 표면화된 것은 IMF체제 직후인 지난 97년말부터. 아이러니컬하게도 성장의 밑바탕이 됐던 대수로공사가 동아의 발목을 잡았던 것. 10억달러가 넘는 대수로공사 미수금에다 김포매립지 사업등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경영을 압박하면서 동아의 사세는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이후 동아는 98년5월 최원석(崔元碩) 전회장의 경영권 포기와 그해 9월 워크아웃기업 1호로 선정되면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동아는 그러나 워크아웃 상황에서도 전문경영인이었던 고병우(高炳祐)회장이 노사갈등으로 중도하차하는등 끊임없는 불협화음 속에 회생의 길을 찾지못한 채 표류하다 결국 법원의 파산선고로 간판을 내리는 상황을 맞았다. 정두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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