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거래 실종 왜 일까.’ 전세시장이 이상한파를 맞고 있다. 연말연시도 지나 본격적인 신학기 이사 수요가 집중돼야 할 시기인데도 거래시장은 미동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일선 중개업소들은 “매매에 비해 전세 거래는 경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음에도 올해는 거래가 완전히 실종됐다”며 “예년에 없었던 다양한 변수들이 작용하는 특수상황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가을 매매가 전세 수요를 흡수했다=일선 중개업소들은 올 겨울 전세시장 위축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지난해 가을의 폭발적인 매수세 증가를 꼽고 있다. 전세수요자 상당수가 집값 급등에 다급함을 느껴 대거 매매로 돌아선 게 방학이사철 거래 위축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분당신도시 서현동 서울공인 정임숙 사장은 “집값 급등이 세입자들의 내 집 마련을 부추겼다”며 “이 때문에 막상 전세시즌이 다가와도 움직임이 크게 줄어든 것 같다”고 진단했다. 노원구 중계동 좋은집공인 성기창 사장도 비슷한 진단을 내놓았다. 그는 “지난 가을 수요자 상당수가 외곽지역 집값이 오르는 데 부담을 느낀 세입자들”이라고 말했다. ◇세입자 이동이 줄었다=지난해 추석 이후 급등한 전셋값도 신규 전세수요 위축의 원인으로 꼽힌다. 수천만원씩 오른 전셋값과 이사비용에 따른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계약기간이 끝난 세입자들이 가능한 한 기존 전세계약을 연장하려는 경향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의 전세시장 약세는 매물이 급증했다기보다는 매물 감소폭보다 수요 감소폭이 훨씬 컸기 때문으로 파악되고 있다. 일산신도시 주엽동 인터넷공인 관계자는 “각 단지별로 차이는 있지만 매물이 2~3개인 곳이 대부분”이라며 “하지만 수요가 거의 없다 보니 소량의 매물조차 소화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지역 특수성 곳곳에 나타나=학군 등 개별 지역의 특수성도 전세 수요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 목동신시가지의 경우 최근 몇 년간 주변에서 유입된 전입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올 겨울 전세수요가 급감한 경우다. 목동 내 일부 초등학교의 경우 전학생을 받아들일 여력이 없어 전세 수요의 가장 큰 요인인 ‘학군수요’가 사라졌다. 목동 양지공인 관계자는 “매물이 많으니 전셋값도 빠지고 있다”며 “3단지 30평형은 4억원까지 올랐던 전셋값이 3억5,000만원선에도 나오고 있지만 찾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분당신도시는 ‘통합학군’이 전세 수요 감소의 원인으로 꼽힌다. 분당 전체가 1개의 학군으로 통합되다 보니 굳이 좋은 학교를 찾아 움직일 이유가 없어진 것. 특히 이른바 일부 명문고 주변은 내신 문제 때문에 오히려 전세수요자들의 기피대상이 되는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설연휴가 고비=거래 침체에도 불구하고 송파구 등 대규모 입주가 몰려 있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아직 전셋값 변동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전세매물 자체가 풍부하지 않다 보니 시세에 변동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선 중개업계는 설연휴 전후가 올 겨울 전세시장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과 같은 수요 실종이 설연휴 이후까지 이어진다면 전셋값도 본격적인 내림세를 탈 것이라는 것이다. 중계동 좋은집공인 성 사장은 “지난 가을 집주인들이 전셋값을 너무 높여놓은 것도 거래 위축의 원인”이라며 “수요가 나서지 않으면 내림세를 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일산 대박공인 관계자도 “20~30평형대는 그나마 수요가 꾸준하지만 40평형대 이상은 워낙 수요층이 적어 가격이 하락세를 보일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일선 중개업소들은 수요가 살아나더라도 지난 가을 이사철의 폭등세가 재현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대치동 O공인 관계자는 “금리가 오르고 있기 때문에 융자를 얻어서까지 무리하게 전세를 옮기는 수요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올 방학 이사철은 최근 몇 년 새 조용하게 넘어가는 시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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