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중견기업 대출을 한시적이라도 중소기업 대출실적으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 추가 중기지원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중소기업 신속지원 프로그램인 패스트트랙(Fast-Track)의 우선상환 조건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거세지고 있다. 이 같은 지적은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있어 금융지원을 받지 못하는 중견기업에 도움이 되고 정부와의 양해각서(MOU)상 대출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은행의 부담을 덜 수 있는데다 특정 부문에 자금이 쏠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중견기업 대출, 중기 대출실적으로 인정해야=23일 금융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3~4%의 경제성장률을 감안해 세운 올해 중기대출 순증액 50조원을 바꾸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대출이 우량 중소기업에만 집중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반면 중견기업은 사각지대에 놓여 금융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태다. 현재 국내 시중은행들의 중견기업 여신시장 규모는 약 6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들이 중견기업 지원을 꺼리는 것은 대기업보다 우량하지 못한데다 중기대출 할당량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시중은행이 중기대출 목표를 채우기 위해 주택담보대출 취급을 제한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경기 성남의 C기업 대표는 “예를 들어 세탁업은 업종 특성상 인력이 많이 소요되는데 근로자 수가 100명만 넘어도 대기업으로 분류된다”며 “중견기업은 금융위기로 자금난에 시달려도 중소기업 지원책을 받지 못하는 금융 사각지대에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분류기준을 바꾸거나 완화해 중견기업을 지원할 수도 있지만 법 개정에 시간이 걸리는데다 변경작업도 쉽지 않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은행들이 중기대출 목표를 채우지 못해 허덕이는 상황이고 중견기업은 금융지원을 받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며 “금융감독 당국에서 일부 중견기업에 대한 대출을 한시적이라도 중기대출로 인정해주면 손쉽게, 효율적으로 중기대출 자금을 집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패스트트랙도 보완해야=지난해 10월 도입된 패스트트랙도 우선상환 조건 때문에 최근 은행들이 취급을 꺼리고 있다. 은행들은 패스트트랙 할당량을 채우기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패스트트랙은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중 AㆍB등급 업체에 대출해주는 프로그램으로 지난 3월 말까지 10조7,000억원이 지원됐다. 문제는 업체가 패스트트랙을 받게 되면 다른 대출보다 먼저 상환해야 한다는 것. 신보 등 보증기관이 여신부실을 우려해 가장 먼저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다른 여신이 있어도 패스트트랙을 제일 먼저 갚아야 하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추가 대출을 꺼리게 되고 고객 입장에서도 더 높은 금리의 대출이 있어도 패스트트랙을 먼저 상환해야 한다”며 “무조건 우선순위를 주는 것은 보증기금이 다시 리스크를 은행에 전가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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