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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팔불출’
입력2003-03-05 00:00:00
수정
2003.03.05 00:00:00
필자는 95년8월부터 3년간 영국 런던에서 재정경제관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런던은 국제적인 선진 금융도시로서 세계 금융시장의 바로미터(barometer)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곳이다.
이 때에 필자는 선진국의 주요 금융기관들이 세계경제흐름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점검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HSBC, 바클레이즈 등과 같은 세계 유수금융기관은 이미 세계경제의 글로벌화에 따른 경쟁심화와 경기침체를 감지하고 전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영업망을 점검하고 있는 중이었다. 3년이상 적자점포는 폐쇄하고 1년이상 적자점포는 규모를 반으로 줄이고 있었으며, 자국내 영업점도 통폐합하는 등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카슈랑스 작업이 한창 추진되고 있었다.
이처럼 세계 금융시장이 한창 구조조정을 시작하고 있는 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은 런던시장에 지점이나 사무소, 현지법인 하나 개설하지 못하면 CEO가 마치 팔불출이나 되는 것으로 여겨졌고, 너나할 것 없이 앞다투어 개점테이프를 끊었다.
그러나 1997년 우리나라에 IMF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이렇게 허겁지겁 개설된 지점, 사무소 및 현지법인은 제대로 일도 한번 해보지 못하고 거의 다 폐쇄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세계 금융시장의 동향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 흐름과 너무 동떨어진 경영을 하여 실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CEO라는 사람들이 세계금융시장 동향변화를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체면이나 주위눈치를 보면서 경영을 한 결과로 초래된 심각한 잘못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필자는 소중한 교훈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항상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이나 주요 경제주체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대비하는지 잘 살펴보고 그에 맞게 신속히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한발 앞서 변화를 주도하지 못한 대가가 얼마나 크고 아픈 것이었던가?
IMF외환위기를 맞아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떠나야 했고, 뼈를 깎는 인위적 구조조정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지 않았던가? 요즘 필자는 CEO가 되어있는 시점에서 진짜 팔불출은 어떤 사람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곤 한다. 그 당시 팔불출을 면하기 위하여 앞다퉈 지점이나 사무소, 현지법인을 개설했던 사람들이 진짜 팔불출이었음이 시간이 지난 지금 너무나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으니….
<배영식(신용보증기금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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