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도입된 부가가치세는 35년째 10%다. 고급음식점에 가면 음식값과 별도로 10%를 내는 게 부가세다. 최종소비자가 부담한다는 특성상 올리기가 쉽지 않다. 물가에 바로 직결되는 탓이다. 부가세를 섣불리 올리려다 정권을 내준 나라도 있고 잘못 손댔다 자칫하면 민심의 엄청난 역풍에 직면할 수 있다. 한마디로 '뇌관'이다.
그런데도 최근 부가세를 두고 정치권이 뜨겁다. 복지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법인세와 소득세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성장 여력이 쪼그라드는 상황에서 나라 곳간을 채우기 위해 법인세를 올릴 수도 없고 부자 증세에도 한계가 있는 탓이다. 실제로 복지선진국인 스웨덴을 비롯한 주요국의 부가세율은 20%를 넘으며 나라 곳간을 채우는 데 부가세를 주로 사용한다.
이 같은 상황론을 종합적으로 감안, 조세 전문가들은 부가세 상향에 따른 후폭풍을 최소화하면서도 재정을 확충하는 방법으로 부가세 면세와 영세율 범위를 조정한 뒤 중장기적으로 세율인상을 검토하는 2단계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면세 규모만 매년 약 5조원=1일 정부에 따르면 올해 부가세 감면액은 4조7,602억원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감면액 4조4,148억원보다 3,454억원이나 늘어난 것이다.
문제는 부가세 감면에 구멍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부가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면세나 영세율 적용 범위가 상대적으로 넓고 부가세 세액공제 제도를 악용한 자영업자들이 세금을 탈루하고 있다. 이 때문에 1차적으로 사각지대를 없애고 세율인상을 검토해야 한다는 말이 많다.
현재 도서나 신문 같은 출판 분야와 보습학원은 부가세가 면제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는 부가세 면세 항목이 주요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아 이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특히 사설 학원은 부가세를 면세해줄 이유가 부족하다는 얘기가 많다.
영세율(0%)도 문제다. 영세율이 적용되면 부가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데 지난해 부가세 영세율에 따른 감면액이 1조9,915억원에 달한다. 영세율은 해외 수출품에 주로 매겨진다.
하지만 수출을 위한 내국신용장 거래에도 혜택이 주어진다. 내국신용장이란 기업이 수출신용장을 바탕으로 원자재를 국내에서 조달하기 위해 국내 업자 앞으로 개설하는 것이다. 박명호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내국신용장에 포함돼 있지 않은 부분까지 영세율을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현행 규정에서는 수출과 관련이 있는 거래의 어디까지 영세율이 적용되는지 전적으로 해석에 의할 수밖에 없어 영세율 적용 범위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자영업자들이 가짜로 세금계산서를 끊어 부가세를 환급 받는 사례도 너무나 많다. 주유소와 고철 수집상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거짓으로 세금계산서를 발급해주는 '폭탄업자'를 이용해 부가세를 불법적으로 돌려받고 있다. 거래 금액이 크기 때문에 부당공제 금액도 만만치 않다.
국세청이 올해 초부터 찾아낸 거짓 세금계산서 거래액은 5조359억원에 달한다. 이 과정에서 국세청이 부과한 세금만 3,736억원이다.
신용카드 등 발급세액공제도 조정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음식점이나 숙박업 같은 업종은 카드매출액의 2.6%(최대 700만원)를 세액 공제 받고 있다. 신용카드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인데 이 같은 역할은 사실상 끝났으므로 세수확보 차원에서라도 단계적으로 세액공제 비율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에서도 낮은 수준…고령화 감안해야=우리 부가세율은 전세계적으로 봐도 상당히 낮다. 일본(5%)과 호주(10%) 정도만 우리와 비슷하거나 낮고 대다수 유럽 국가는 20% 이상의 세율을 부과하고 있다. 그나마 일본은 2014년에 8%, 2015년에 10%로 인상하기로 했다.
스웨덴(25%)이나 핀란드(23%) 같이 복지 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부가세율이 높다. 재정이 안 좋을 때나 복지재원이 필요하면 부가세를 이용하고 있어서다. 법인세율은 전세계적으로도 계속 낮춰지고 있다. 조세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 기준(49조1,000억원)으로 부가세를 0.2%포인트만 올려도 추가 세수는 1조원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는 부가세 인상 논의를 해야 할 시점이 됐다는 의견에 힘을 실어준다. 우리나라는 2018년부터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4%를 넘는 고령사회가 된다. 부가세는 소비에 붙는 세금이어서 소득보다 지출이 많을 수밖에 없는 노인 구성원이 많아지면 조세저항이 거세진다. 일본이 부가세 인상에 어려움을 겪은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부터 부가세 인상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인상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부가세 인상이 저소득층에 불리한 역진성이 있고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걱정이 많다. 부가세를 2%포인트만 올린다고 해도 실제 가격은 최소 100원 단위로 뛰기 때문에 소비자 부담이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성명재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1년만 놓고 보면 역진적일 수도 있지만 생애 전체적으로 보면 비례적이며 실제 소득계층별로 총소득 대비 부가세 실효세율을 보면 평평하게 나타난다"며 "물가는 당장은 오르겠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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