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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채 관리, 증권사만의 잔치로 전락 우려


지난달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해 시행된 회사채관리회사 업무가 증권사들의 독점시장으로 고착화될 조짐이다. 금융당국은 당초 채권 발행업체 또는 투자자와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예탁결제원, 증권금융 등 제3의 기관을 사채관리회사 영역에 포함시켰지만 이들 유관기관이 시장에 파고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2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500억원 규모 3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한 LG실트론은 인수주관사로 KB투자증권을 선정했고 사채관리회사로 동양증권을 지정했다. 최근 1,500억원 규모의 3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한 SK 역시 인수를 하나대투증권과 신한금융투자에 맡겼고, 사채관리는 한국투자증권에 일임했다.

사채관리업무가 증권사들의 전담 영역이 된 것은 발행기업이 이해관계에 따라 사채관리회사를 지정하기 때문이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사채관리회사는 발행기업에서 결정하는데 해당 기업이 업무 교류하는 증권사를 지정하는 게 일반적이어서 유관기관들의 참여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채의 물량교환(바터) 관행도 일부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회사채 인수 부문에서는 일부 대기업 계열 증권사들이 계열사의 회사채 물량을 대표인수한 뒤 다른 증권사에 나눠주는 방식으로 서로 물량교환을 해 왔다는 지적을 받았다. 따라서 사채관리회사 업무 역시 인수를 주관하는 증권사가 이해관계를 지닌 다른 증권사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사채관리회사 업무가 증권사들의 전담영역이 되면서 애초 법의 시행 취지가 퇴색됐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15일 상법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증권사 등이 회사채인수와 관리업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없다. 회사채 인수업무를 수행하면서 발행기업과 이해관계가 발생하는 데다 무기명사채의 사채권자 파악이 힘들어 소액 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사채관리업무를 사실상 증권사들이 독점하면서 이러한 법의 취지가 사실상 무의미하게 됐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법의 취지는 사채모집 수탁회사가 발행기업에 우호적인 만큼 투자자 보호에는 미온적일 수 있어 이를 분리하자는 것”이라며 “인수에 참여하지 않은 증권사들이 사채관리를 맡는 게 위법은 아니지만 잠재적 고객인 발행기업과의 관계 증진 등에서 투자자 보호의 목적이 퇴색될 우려는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현재 시행 초기여서 증권사 위주로 사채관리가 이뤄지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예탁원, 증권금융 등 제3의 기관이 중심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증권업계의 반응이다. 금투협 관계자는 “일부 증권사들은 제3의 기관에 맡기자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상당수 증권사들이 이를 반대했다”며 “증권사들이 사채관리업무를 신사업으로 여기는데다 발행업체와 새로운 관계형성 등 기회를 맞을 수 있다는 측면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사채관리회사 업무과 관련 이해상충 관계가 없는 제3의 기관이 담당하는 게 바람직할 것으로 평가했다. 현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사채관리회사 설치는 회사채 시장의 활성화와 투자자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목적”이라며 “사채관리회사의 자격 요건에 있어 우선적으로 생각할 것은 이익상충 문제이며 투자자에게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정비하는 게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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