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을 베낀 '주스기'가 판치던 80년대, 그는 국내 최초로 건강을 위한 '녹즙기' 개념을 들여온 선구자였다. 시대를 풍미했던 녹즙 붐 덕에 90년대는 1년에 600억원의 매출을 올리던 성공한 기업인이었다. 하지만 94년 찾아온 '녹즙기 쇳가루 파동'의 희생양이 돼 한 순간에 모든걸 잃고 한국을 떠나야 했다. 녹즙기 전문 업체 엔젤의 이문현(63·사진) 회장 의 얘기다.
그런 그가 과거의 실패를 딛고 다시금 국내 녹즙기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달 30일 만난 이 회장은 "엔젤 제품은 이미 세계 40여국에 수출되며 뛰어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며 "내수 시장에 재도전해 녹즙기 명가(名家)로서의 위상을 다시 되찾겠다"고 말했다.
엔젤녹즙기의 가장 큰 특징은 '100% 스테인리스'다. "제품 안부터 바깥까지 모두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것은 엔젤 녹즙기가 세계에서도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알루미늄이나 플라스틱을 주 재료로 이용할 경우 환경호르몬과 중금속이 녹즙에 섞일 수 있다는 이 회장의 우려를 반영한 결과다. 덕분에 가격은 국내 1위를 자랑하는 타 브랜드 제품과 비교하면 무려 3~4배에 달한다. "건강을 위해 구입하는 제품인데 도저히 양심상 플라스틱으로 만들 수 없다"는 이 회장의 고집 때문이다.
특히 채소나 과일을 분쇄하는 '스테인리스 쌍기어'는 다른 제품과 달리 재료 속 섬유질 속 영양소까지 뽑아낼 수 있는 핵심부품이다. 이 회장은 "3단계에 걸쳐 재료를 으깨는 쌍기어 덕택에 기존 제품보다 2배 이상 착즙이 가능하다"며 "저속 회전 방식으로 비타민 파괴 현상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엔젤의 역사는 84년 엔지니어 출신인 이 회장이 녹즙기란 아이템을 발견해 창업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당시 그가 내놓은 알루미늄 쌍기어 녹즙기는 타사 제품보다 무려 값이 10배나 비쌌지만 당뇨 등을 앓고 있던 환자들을 중심으로 '효과가 좋다더라'는 입소문을 탄 덕에 90년대 초반에는 해마다 1,000%씩 판매고가 늘어나는 대박을 쳤다.
하지만 엔젤(당시 엔젤라이프)의 성공을 시기한 모 경쟁업체의 조작된 실험으로 엔젤 제품은 '쇳가루가 나오는 녹즙기'라는 오명을 얻게 된다. 94년 쇳가루 파동이 그것으로, 당시 실험 내용이 방송에 나온 즉시 제품 판매고는 '0'으로 떨어졌다.
이후 정부 주도의 재검증이 이뤄지고 세달만에 '잘못된 실험'이었다는 정정 방송이 나갔지만, 이미 기업은 부도에 몰린 후였다. 당시 업계 1위였던 엔젤 뿐 아니라 실험을 조작했던 경쟁업체를 포함해 녹즙기 업체 대다수가 사라지고 만 초유의 사건이었다.
그 후 미국으로 도망치듯 떠났던 이 회장은 슬퍼할 틈도 없이 신제품 개발에 착수한다. "난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의지로 기존 쌍기어 재질을 스테인리스로 바꾸고 착즙률과 안전성을 이전 제품보다 크게 개선하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3년만에 다시 국내로 들어와 주식회사 엔젤을 다시 세우고 이후 끊임없는 제품 개량 끝에 지금의 완성품을 내놓았다.
이렇게 탄생한 엔젤 녹즙기는 이미 세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지난 2007년 수출을 시작한 후 현재 미국과 영국, 네덜란드와 스위스 등 선진국 뿐 러시아를 포함한 동유럽 국가를 포함해 총 40여개까지 그 대상이 늘었다. 2010년 250만 달러였던 수출 실적은 지난해 400만불로 증가했는데, 현재 일본과 중국 등 8개 국가와 수출 협의를 진행하는 만큼 올해 수출액은 1,000만불까지 높아질 것으로 이 회장은 기대하고 있다.
2009년 국내 시장에도 첫 선을 보인 이 제품은 과거의 '엔젤녹즙기'를 기억하는 고객들을 상대로 매달 200~300대가 꾸준히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성공 가능성을 직감한 이 회장은 지난해 본격적인 국내 시장 공략을 목표로 제품 판매를 담당하는 계열사인 엔젤스코리아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올해 국내에서 판매고 6만대를 달성하고 매출도 작년의 10배 수준인 500억원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세계 최고의 녹즙기를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버텨왔다"는 이 회장. 그는 "2012년은 국내 시장에서 엔젤의 아성을 회복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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