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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대장
입력2002-07-10 00:00:00
수정
2002.07.10 00:00:00
서구에서는 돈을 주고 군인을 고용하는 용병(傭兵)제도가 역사도 길고 보편화되어 있었던 듯 하다. 오래된 직업에 순위를 매기는 우스개 소리에서 매춘 다음으로 용병(傭兵)이 꼽힐 정도다.
이미 기원전 5세기경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크세노폰이 대장이 되어 1만여 명의 그리스 용병을 이끌고 페르시아제국의 황실 내분에 개입하였다가 전쟁에 패하는 바람에 6000킬로미터를 후퇴하여 힘겹게 그리스로 돌아 왔다는 기록이 있다.
대제국 로마도 후기에는 국가안보를 용병에 의존하였으며 결국 게르만계 용병대장의 손에 의해 멸망했다. 그런데도 르네상스 시대 이태리의 부유한 도시들은 안보문제를 용병들에게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용병대장들에 대한 대접도 뜨거웠다.
용병대장 출신이 밀라노 공국(公國)의 공작이 된 일이 있는가 하면 이태리의 여러 도시에 남아 있는 기사의 동상이나 석상들 중 상당수가 문예부흥기 용병대장들의 기념물이라 한다.
멀리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지금 바티칸 교황청의 근위병들은 스위스 출신 용병들이다.
서구 사회에서 용병제도가 보편적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동양문명권에서는 그 같은 제도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중국 춘추전국시대에는 손빈(孫?) 오기(吳起) 오자서(吳子胥)처럼 이름난 장수로서 다른 제후국에 가서 봉사한 인물들이 많았다.
또 일본의 '사무라이'를 내세우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고용주가 누구이든 문제삼지 않고 오로지 돈을 받고 싸움을 대신해주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용병과는 거리가 있는 듯 하다.
그 논의야 어찌 됐든 평화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용병을 쓸 경제력도 없었던 우리 민족과는 더욱 거리가 먼 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우리가 이번 월드컵 경기에서 외국인 축구감독을 고용해 4강(强)의 대업을 달성한 것은 용병의 역사라는 측면에서도 획기적인 일이 아닐까 싶다. 물론 스포츠 팀에서 외국 선수들을 고용하기 시작한 것은 한참 된 일이다.
그러나 이번처럼 시합의 지휘권 즉 장수의 책임을 맡긴 것은 처음인 듯 하다. 그 성과가 좋았던 만큼 여러 분야 특히 국민의 지탄을 받는 분야에서 유능한 용병대장을 초빙하자는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신성순(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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