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당정협의에서 여당이 재벌과 관련된 핵심정책 부분에서 공정위의 개혁안을 대부분 수용할 것임을 시사했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은 “개혁과제는 절대 후퇴가 없다”고 말했다. 벌써부터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불거졌던 실용주의 노선이 개혁노선에 가려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 의장은 “당의 총선공약과 공정위의 견해가 일치되는 것이 많아 다행”이라며 “시장개혁을 위해 노력한다는 차원해서 공정거래법의 큰 틀은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정은 일단 “출자총액제한제의 폐지는 안된다”고 합의했다. 10대 신성장산업 등에만 규제를 풀어주겠다는 공정위의 의견이 그대로 흡입됐고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예외인정 등 재계가 마지막 보루로 요구했던 사항들도 대부분 합의내용에 포함되지 않았다. 삼성그룹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로 파문을 일으켰던 금융사 의결권 제한 문제도 공정위의 입장에 당이 맞장구를 치는 형국이 됐다. 정 의장은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주식 의결권은 원칙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강철규 위원장의 원칙적 폐지론에 동조했고 “현재 30%까지 허용한 것은 너무 많으며 예측 가능하도록 합리적으로 줄여가겠다”는 ‘단계적 축소론’에 합세했다. 다만 재계의 반발을 감안해 유예기간을 둬 부작용을 줄이기로 합의했다. 당정은 이밖에 계좌추적권을 3년간 연장하는 데도 이의 없이 의견을 같이했다. 일반 지주회사도 금융지주회사와 마찬가지로 자회사 외의 국내회사 주식을 5%를 초과해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부당한 공동행위를 교사한 사업자에 대해서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등 재벌에 족쇄를 물리는 대부분의 규제항목들이 대부분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 "독소조항 나열" 반발=
당정협의 이전까지만 해도 재계는 여당이 기업인들의 입장을 어느 정도 수용할 것으로 관측했다. 하지만 협의내용의 뚜껑이 열리자 반발은 거셌다. 총선 이후 기업정책을 둘러싸고 공정위와 재계간 ‘기싸움’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여당이 결국 정부측 손을 들어줬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시한만료로 폐지된 계좌추적권을 부활시킬 명분과 실익이 없고 금융계열사 의결권을 축소할 경우 삼성전자 등 우량기업이 적대적M&A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며 반대의견을 밝혔다. 대한상의의 한 관계자도 “당정이 의결권 축소에 합의함으로써 국내기업들은 사실상 중추신경이 마비되는 상황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계는 이와 함께 지주회사의 경우 회사 외의 국내회사 주식을 5%를 초과해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이른바 ‘5%룰’도 기업의 투자와 사업다각화를 해치는 ‘악성조항’이라고 비난했다.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한 관계자는 “중국문제 등으로 가뜩이나 기업들이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당정이 개혁에 무게추를 두고 있는 것 같다”며 “정치권의 정체성 문제로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내세웠던 ‘개별연대식 기업가정신 부활론’이 힘을 잃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전경련의 다른 관계자는 “이날 이 부총리가 브리핑을 통해 ‘부처간 합의된 부분이 없다’는 데 마지막 미련을 갖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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