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0조 과잉유동성 어디로<br>작년 10월이후 급증…올 정부예산의 2.8배 달해<br>자산시장 맴돌땐 투기화…또다른 거품 유발 우려<br>불확실성 해소·부채 조정등 구조조정 서둘러야
돈이 넘쳐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2월 말 784조7,000억원으로 집계했던 단기부동자금은 3월 말 8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의 운영자금이나 채권상환용 자금 등을 빼면 단기 부동자금이 줄기는 하겠지만 어찌 됐든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있고 계속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경기회복 초기 시점에서는 과잉유동성에 대한 논란보다는 시중에 풀린 돈을 생산활동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동성이 흐르지 않고 자산시장에만 머물게 되면 자산시장은 투기화되고 물가상승을 유발하는 등 또 다른 거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단기자금 정부예산의 2.8배=한국은행에 따르면 현금과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예금으로 구성된 2월 협의통화(M1)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8% 늘었다. 이는 2006년 12월의 10.4% 이후 2년여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M1 증가율은 지난해 8~9월 2%대 초반에 머물렀으나 당국이 시중에 돈을 풀기 시작한 지난해 10월 이후 가파르게 상승했다.
M1과 함께 저축예금, 단기채권형 펀드, 증권사 종합관리계좌와 고객예탁금 등 만기가 1년 미만인 자금은 2006년 말 611조원에서 2007년 665조8,000억원, 2008년 749조2,000억원으로 증가한 데 이어 금감원의 공식집계상 2월 말 현재 단기부동자금은 784조7,000억원이다. 이러한 추세는 MMFㆍCMA 등 금융권의 단기수신상품들이 3월에도 계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3월 말까지는 단기부동자금이 800조원을 거뜬히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단기부동자금 800조원은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추경예산을 제외한 올해 정부 연간 예산(일반회계+특별회계+기금) 284조5,000억원의 2.8배에 해당한다. 단기부동자금은 정부의 추경예산이 집행되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과잉유동성은 한국경제의 딜레마=하루짜리 콜금리가 기준금리(2%)보다 낮은 상황에서 돈은 자본 이익을 얻기 위해 자산시장으로 움직이게 되고 급속하게 유입된 자산시장의 유동성은 투기적인 자금으로 변질되며 과잉유동성 논란을 낳게 된다.
문제는 경기부양을 위한 과잉유동성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것이지만 유동성이 의도하지 않은 곳으로 흘러가 생기는 부작용이다. 만일 금융시장의 중개기능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기업과 은행의 부실은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과잉유동성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섣불리 금리 인상 등 통화긴축에 나설 경우 경기회복은 요원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유동성 함정’이 가장 우려된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통화팽창책이나 재정지출 확대에도 실업률이 증가하는 등 실물경기 회복이 뒤따르지 않는 유동성 함정의 뒤에는 경기침체가 고착화되는 디플레이션이 바짝 따라붙는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가장 꺼리는 시나리오다.
◇돈의 물꼬를 산업으로 돌려야=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지금은 과잉유동성을 죄기보다 적절하게 컨트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산시장보다 자금이 필요한 기업체 등 실물경제로 유도해야 한다는 것. 실제 800조원의 돈이 풀려 회사채시장이 살아나고 있다고 하지만 이는 AA등급 이상의 우량등급에 국한된다. 등급이 낮은 회사채는 여전이 외면 받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위원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시장에 풀린 돈이 수출 중소기업 지원 같은 데 쓰이지 않으면 결국 돈놀이가 될 수밖에 없다”면서 “금융기관을 통해 들어가는 돈이 생산적인 곳에 쓰이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부가 구조조정 및 자구책을 가지고 있는 투기등급 기업의 회사채에 대해 정부보증을 통해 시중 대기자금을 산업 쪽으로 연결시키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은행 자본확충 등을 통한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높여 대출을 늘리고 가산금리를 낮춰 기업과 가계의 신규 대출과 대출 상환의 부담을 줄이는 방안도 거론된다. 정부도 단기부동자금 흡수를 위해 1년 미만 단기 국고채 발행, 부동산 간접 투자상품 활용 등을 계속 검토하고 있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현재로서는 유동성이 생산활동으로 연결되도록 길을 열어주는 방안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부채를 조정하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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