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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삶 그리고…] 우종완 더베이직하우스 사장 하청봉제공장으로 출발 캐주얼 의류 1위‘ 우뚝’브랜드 출시 2년만에 매장 100개 ‘폭발적 성장’협력업체에 ‘15일 현금결제’ 등 상생경영 실천 정민정기자 jminj@sed.co.kr 베이직하우스 중국 상하이 쉬마오 백화점 매장 관련기사 더베이직하우스 “올 매출 1,600억” ‘갑 같은 을, 을 같은 갑’ 대기업에 하청을 하던 봉제 공장에서 시작해 자체 브랜드 출시 5년 만에 매출 1,600억원을 내다보는, 캐주얼 업계 1위로 우뚝 선 ㈜더베이직하우스 우종완(41ㆍ사진) 대표가 항상 되뇌이는 말이다. 사진작가가 꿈이었던 우 대표는 염색공장을 하던 부친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고 부산대 섬유공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면방직을 하던 태광산업과 태창 등에서 원사와 편직 등 의류산업의 기본부터 차근차근 익혀 나가다 속옷 유통을 하면서 자신에게서 장사꾼 기질을 발견하게 됐다고 한다. “여기저기에서 속옷들을 대량으로 구매해서 박리다매로 팔았다. 2년여간 장사를 하고 나서 통장을 보니 4억원 정도가 남아 있었다.” 이후 집안의 뜻에 따라 부친이 경영하던 염색공장에 들어갔지만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나와 창업의 길로 나섰다. 그 때가 94년 초반으로 더베이직하우스의 모태가 된 일흥섬유다. 그는 “염색이라는 업종 자체가 임가공 성격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면서 “편직, 봉제 등 완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살 길이라고 판단했다”고 창업 배경을 설명했다. 일흥섬유는 하청 봉제공장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지금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브랜드 제품들이 다 우리 손을 거쳐갔다”면서 “그러나 하청업체로서 겪어야 할 고생도 말도 못하게 많았다”고 회상했다. 특히 대기업들이 어음으로 결제하는 바람에 원사를 구입하거나 협력업체에 대금을 지불해야 할 때, 월급을 줘야 하는 월말이 가까워 올 때마다 잠도 못자고 돈을 구하러 사방팔방 돌아다녔던 기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그래서인지 그는 ‘갑 같은 을, 을 같은 갑’을 늘 강조한다. “내가 ‘을’이었을 때 ‘갑’인 대기업으로부터 아픈 경험을 많이 겪었지만 이제 내가 ‘갑’이 됐다고 그들의 잘못된 모습을 닮고 싶지 않다. 대신 대기업에게는 ‘갑’이 되어서 우리의 자존심을 지킬 것이다.” 이는 비단 말로 그치지 않는다. 더베이직하우스는 ‘15일 현금결제’ 원칙을 지키기로 유명하다. 즉 협력업체들이 납품한 날로부터 정확히 15일 이내 현금으로 결제해 주는 것이다. 한편 대기업 하청을 하던 그가 자체 브랜드를 내겠다고 나섰을 때 주변에서는 무모한 도전이라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고. 더구나 부산에서 시작한 탓에 지역적인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었다. 우 대표는 그러나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시기를 거치면서 소비자들의 기호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브랜드의 성공 가능성을 확신하고 추진했다”고 말했다. 브랜드를 대대적으로 알리기 위해 필요한 대규모 자금 동원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냥 자신의 공장 한 켠을 개조해 첫 번째 매장을 열었다. 이 때가 지난 2000년 9월. 그러나 저렴한 가격과 뛰어난 품질이 입 소문을 타면서 하루가 다르게 매장을 찾는 손님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만 2년 만에 매장은 100개로 늘어날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두었으며 올해 말에는 169호 매장이 문을 연다. “멀티 샵 개념의 베이직하우스(Basichouse)는 남성, 여성, 아이들 모두가 자신의 옷을 고를 수 있는 곳이란 말이다. ‘기본을 지키는 집’이라는 원칙을 지켜야 소비자가 찾을 것이다.” 입력시간 : 2005/12/1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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