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9일 현대자동차 노조는 대의원 대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파업을 결의했다. 세계 자동차 산업이 벼랑 끝 위기에 몰린 지금, 각국 완성차 업체들이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을 하고 각국 정부도 지원에 나서는 시기에 현대차 노조는 '투쟁'을 하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현대차 노조의 파업 결의는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에 대한 반발도 아니다. 노사가 합의한 '주간연속 2교대제'의 전주공장 시범실시를 예정대로 하라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차가 팔리지 않아 주간 8시간 조업으로도 재고가 쌓이는 마당에 주간 8+9시간 근무를 강행하자는 것이다. 지금의 자동차 산업 위기는 정부의 지원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업계 스스로 생산성을 높이고 품질ㆍ디자인을 개선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해야 위기 이후 다시 한번 도약의 기회를 맞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 자동차 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려면 후진적 노사관계 개선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후진적 노사문화에 생산성 낙제점=미국 경영컨설팅사인 올리버와이먼이 2006년 발표한 하버보고서에 따르면 현대ㆍ기아차의 조립생산성(HPV)은 각각 31.1, 37.5로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혼다, 도요타 등 6개 기업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HPV는 총 투입시간을 총 생산대수로 나눈 것으로 수치가 낮을수록 생산성이 높은 기업이다. 혼다가 21.1로 가장 생산성이 높았으며 도요타가 22.1로 뒤를 이었다. 현대차의 1인당 생산대수나 매출액ㆍ영업이익도 도요타에 크게 못 미쳤다. 2006년 기준 현대차의 1인당 생산대수는 도요타의 43%, 1인당 매출액은 40.8%, 1인당 영업이익은 22.2%에 불과했다. 현대ㆍ기아차의 이 같은 낮은 생산성은 '상생'을 외면한 노사문화가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현대차 노조는 1987년 설립된 후 1994년 단 한해를 제외하고는 매년 파업을 해왔다. 22년 동안 파업일수만 무려 362일, 생산차질 111만대, 파업에 따른 매출손실액이 11조6,000억원에 달한다. 파업뿐만이 아니라 현대차 단체협약에는 ▦국내 생산물량 유지 및 국내 생산공장의 축소와 폐쇄 금지 ▦해외공장 생산 완성차 및 부품의 수입금지 ▦해외공장 신설과 차종 투입계획 확정시 조합원 심의ㆍ의결 등 시장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없도록 족쇄를 채운 조항들이 즐비하다. 파업을 무기로 한 노조의 끊임없는 경영 개입은 생산성 저하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노사가 협력적인 관계로 전환되지 않는 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위기극복도 낙관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현영석 한남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자동차 업체의 경영자, 관리자, 현장 근로자 모두는 경쟁 상대가 노사가 아니라 외국 경쟁업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위기극복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해외시장 선제적ㆍ전략적 대응 필요=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위상이 어떻게 결정되느냐는 이번 세계 자동차 산업의 지각변동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세계 자동차 시장은 미국이나 유럽은 물론 러시아ㆍ인도ㆍ중남미 등 신흥시장까지 마이너스 성장세로 돌아서면서 암울한 분위기만 감돌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생산물량 중 80%가 해외로 수출되는 만큼 이런 때일수록 해외시장 확대에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공업학과 교수는 "지역별 전략차종 개발이나 마케팅 강화에 주력해야 할 시점"이라며 "이와 함께 친환경차 및 전기차 등 차세대 자동차에 대한 원천기술을 확보해 해외시장에서 승부를 낼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ㆍ기아차의 경우 지난해 말부터 소형차 중심의 전략차종 개발에 경영의 초점을 맞추는 한편 중요 시장의 경우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 미국시장 점유율 확대 등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 성과를 평가하기는 이르다. 업계 관계자들은 "세계 자동차 산업의 지각변동은 앞으로 1~2년 내에 이뤄질 것"이라며 "승자가 되기 위한 해법을 모색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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