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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세계,닫힌 정부/김정국 현대중공업 사장(특별기고)
입력1997-12-10 00:00:00
수정
1997.12.10 00:00:00
김정국 기자
최근 몇 년간 우리사회는 선진국 환상에 푹 빠져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돌파하고 선진국만이 가입할 수 있다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회원국이 되었다고 하니 한번쯤 해외여행은 다녀와야 위신이 서고 비싼 것을 사 써야 체면을 유지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여기에 정부도 여행경비, 해외이주비, 부동산투자허용한도를 무섭게 늘리며 선진국 환상을 부채질하는데 앞장섰다.
그러나 기업이든 가계든 씀씀이가 헤프면 살림을 꾸려나갈 수 없는 법이다. 나라살림도 예외는 아니다. 결국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외국언론의 우려대로 우리는 지금 감내하기 힘든 고통을 받고 있다. 이같은 사태는 모든 경제주체의 책임이 크지만 정부의 무사안일한 대응이 가장 큰 원인이다.
올들어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해도, 동남아 금융위기가 코앞에서 우리를 위협하는데도 정부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폭등하면서 외국자본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안되었을 때야 곪을 대로 곪아버린 종창을 발견하게 된 셈이다. 제2의 새마을 운동이나, 제2의 국채보상운동이라도 벌어야할 판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정부는 항상 선진국임을 공언해왔다. 외채가 늘어나고 국제수지가 적자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데도 장밋빛 정책들로 순진한 국민들을 안심시켜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로 선진국의 일원으로서 갖춰야 할 원칙과 기본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새삼스런 얘기지만 국경없는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고비용·저효율을 타파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기업들의 금과옥조였다. 기업들은 「저비용·고효율」을 위해 아픔을 감수하고 종업원들을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경영혁신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의 이같은 노력도 정부의 탄력적인 정책의 뒷받침이 없으면 그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수없이 지적돼 왔듯이 유감스럽게도 우리 정부는 제기능과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점이 많다.
최근 국방부가 차기잠수함사업(SSU)을 특정업체와 수의계약하려는 사례를 보자. 막대한 국가예산이 투입되는 국책사업을 국민들의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이기식 수의계약으로 결정하려 하고 있다. 잠수함사업을 경쟁입찰로 할 경우 한 척당 1만달러 내외의 외화를 절감하고 기술을 싸게 도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런데도 경쟁을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결정하려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나라경제가 가뜩이나 혼란한 상황에서 국민의 혈세를 한 푼이라도 아끼는데 솔선수범해야 할 정부의 조치라고는 믿고 싶지 않을 뿐이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국제사회의 선진화된 규범을 어떻게 소화할 수 있느냐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볼 때 보다 합리적인 방향이 모색되지 못했다는 것은 실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가진 한계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대선정국과 최악의 경제위기 등으로 어수선한 때 정부가 굳이 「막다른 선택」을 고집했어야만 했는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난도 곰곰이 들여다보면 원칙과 기본이 무시되어왔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탓하기엔 너무 늦어버린 감이 있지만 그렇다고 「안」의 병폐를 덮어두고 「밖」을 내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안의 힘을 먼저 기른 연후에야 남과 겨룰 수 있는 법이다.
IMF 구제금융 지원으로 한국경제의 체면은 이제 바닥으로 떨어졌다. 결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이번 기회를 지난 날의 잘못된 관행과 모순을 고치고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정부는 환골탈태하는 마음으로 모든 정책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집행해야만 할 것이다. 그같은 노력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기업이나 국가의 경쟁력강화는 그야말로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경제의 앞날은 지금보다 더 불투명해질지도 모른다. 상식이 통하는 환경에서만 기업도, 국민도 책임감을 가지고 힘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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