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국내 은행은 무려 21조원의 대손충당금을 적립했다. 은행의 총대출 규모가 900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2%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이 손실로 사라진 것이다. 과거 호황기에 있을 때 과다하게 공급을 늘렸던 대출자산의 부실 심화가 주요 원인이다. 예대업무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내 은행의 수익구조하에서는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호황기에 수익을 극대화하고자 대출 공급을 확대하고 이 과정에서 영업경쟁이 치열해지고 신용 리스크에 대한 평가가 느슨해지면서 잠재부실 여신 편입이 증가한다. 그러나 모든 은행이 이 같은 행태를 보이는 건 아니다. 보수적인 은행들은 대손충당금 변화에 따른 이익 변동성이 작다. 보수적인 은행들은 예대업무에 대한 수익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대표적인 은행이 신한금융지주다. 신용카드∙증권∙보험 등 이익 포트폴리오의 균형이 가장 잘 돼있기 때문에 은행이 공격적으로 자산의 성장을 확대하지 않아도 그룹의 이익은 꾸준히 성장한다. 금융위기 이후 대손충당금에 대한 부담이 가장 낮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신한지주는 연간 2조7,000억원 이상의 수익을 창출한다. 이 가운데 1조원은 은행이 아닌 자회사가 벌어들이는 수익이다. 시중은행 가운데 어닝 파워가 가장 크면서 다변화돼 있다. 다만 최근 벌어진 최고 경영진에 대한 스캔들은 무엇보다 지배구조가 중요한 은행의 신뢰를 희석시켰다. 다른 산업과 달리 자금중개기능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공익성이 강조되는 은행으로서는 신뢰가 곧 경쟁력인 것이다. 결국 신한지주의 신뢰가 회복될 수 있을 때 본질적인 이익창출 능력에 대한 평가도 회복될 수 있으며 그동안 잃어버렸던 주가의 프리미엄도 다시 만회할 수 있을 것이다. 경영진 구성을 앞두고 신한지주에 대한 기대는 크다.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다. 특히 경영진 구성이 변화한다 해도 그동안 신한지주를 리딩뱅크로 유지시켰던 의사결정 시스템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신한지주가 가진 어닝 파워에 근거한 밸류에이션이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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