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일 타계한 고(故)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은 은행가와 경제관료ㆍ소설가 기업인 등 폭넓은 삶을 살아온 대한민국 경제의 산증인이었다. 고 김 명예회장은 지난 6월 미수(米壽)를 맞아 출판기념회를 갖는가 하면 직전까지 전경련 고문으로 활동하는 등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열정을 놓지 않았다. 지난 1920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의 경제적인 감각과 국가 경제에 대한 애정은 대구은행 설립에서 오롯이 피어났다. 그는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 지방은행이 필요하다고 판단, 국내 최초로 대구은행을 설립한 후 신용대출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남다른 경영능력은 결국 대구은행을 설립 7년 만에 전국 은행 1위로 올려놓기도 했다. 고 김 명예회장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제일은행장으로 발탁되고 본격적인 금융인으로서의 삶을 걸었다. 그는 제일은행에서 탁월한 실적을 보였고 이후 외환은행장과 한국산업은행 총재, 한국은행 총재 등 금융수장을 두루 거치게 만들었다. 그는 실물 경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1982년 11대 경제부총리에 올라 30%까지 치솟던 물가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는 당시 남대문시장 등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농산물 가격 안정을 이끌어냈고 결국 물가 상승률을 한자릿수로 내리는 성과를 일궈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사돈지간인 고 김 명예회장은 기업 경영에서도 놀라울 정도의 수완을 발휘했다. 그는 1987년 삼성전자 회장과 1988년 ㈜대우 회장을 거쳐 1995년에는 이수그룹 회장을 맡아 이수그룹을 오늘의 중견그룹으로 키워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고 김 명예회장은 이수화학을 모체로 그룹으로 출범시킨 후 화학과 건설, 정보기술(IT) 부품, 바이오ㆍ의료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혀 탄탄한 성장기반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그는 원가시스템에 근거한 캐시플로 경영기법을 도입하는 등 현장경영자로서 명성을 날렸다. 매일, 매달마다 경영 성과를 꼼꼼하게 점검하고 문제점을 찾아내 이를 곧바로 보완해내는 깐깐한 경영관리는 그룹을 확장하는 데 중요한 발판으로 작용했다. 그는 또 일찌감치 GE의 인재 교육방침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아 사람 중심의 기업문화도 일궈냈다. 이는 그가 평소에 “50년 후나 100년 후쯤 후손들이 자랑스러워 할 회사로 만들겠다”는 포부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고 김 명예회장은 경제 각 분야에서 쌓아놓은 이 같은 공로 이외에도 소설가로 활동하는 등 팔방미인의 재능을 발휘해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그는 ‘욕망의 방’과 ‘비둘기의 역설’ ‘복제인간’ 등 수십편의 장ㆍ단편 소설책을 내놓았으며 86세의 나이에 ‘복제인간’이라는 소설집을 출간해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