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학은 숫자를 다루는 학문이다. 오늘날 대부분 학문에서 통계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질적 연구라고 해서 통계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처럼 양적 연구라고 해서 단순히 숫자만 가지고 사회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다. 숫자 자체보다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양적 연구에도 연구자의 관점과 해석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문제는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같은 통계라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게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정한 의도를 위해 통계를 편중된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 한국거래소가 발표한 지난해 상장지수펀드(ETF) 결산에서도 이 같은 문제가 나타난다. 거래소는 양적으로 꾸준히 성장하는 ETF 관련 통계를 제시하며 "한국 ETF 시장이 글로벌 시장으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거래소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도 될까. 지난해 말 거래소는 업계 관계자들과 ETF 시장 관련 비공개 토론회를 열었다. 당시 토론회에서는 국내 ETF 시장의 유동성이 지나치게 특정 종목에 편중돼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거래소에 상장된 146개 종목 중 지난해 일평균 거래대금이 1% 이상인 종목은 7개에 불과했다. 나머지 139개 종목은 사실상 ETF로서 상품성이 제로에 가깝다. 거래소가 주최한 토론회인 만큼 거래소 측도 이 같은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거래소가 발표한 '2013년 ETF 시장 결산과 전망'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쏙 빠져 있다.
현재 전세계 시장에서 ETF 시장이 가장 발전한 곳은 미국이다. 세계거래소연맹(WFE)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미국 시장의 상장종목 수 비중은 전세계 시장의 20% 정도지만 거래대금 비중은 전체의 90%에 육박한다. 풍부한 유동성을 통해 지속적으로 투자자를 유인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상장종목 수 비중은 전세계에서 2%지만 거래 비중은 1%에 불과해 상장종목 수(약 25%)는 많으나 거래 비중(약 2%)은 아주 낮은 영국을 닮아가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과연 거래소가 우리나라 ETF 시장이 '잘 발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통계 너머 진실을 숨기는 거래소의 꼼수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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