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에는 하얀 가운 입고 환자 치료해요.” 이지영 강남이지치과 원장. “밤에는 까만 드레스 입고 노래 불러요.” 가수 이지(E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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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잡족으로 시작해 사장 됐어요.” 강형주 사장이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남성맞춤복 안드레아바냐 로고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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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 위에서 인생을 배우죠.” 박우동 변호사가 평소 훈련하는 최무배 체육관에서 운동을 마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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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투잡스족, 생계형에서 성취형으로
김면중 기자 whynot@sed.co.kr
“낮에는 하얀 가운 입고 환자 치료해요.” 이지영 강남이지치과 원장. “밤에는 까만 드레스 입고 노래 불러요.” 가수 이지(EG).
“투잡족으로 시작해 사장 됐어요.” 강형주 사장이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남성맞춤복 안드레아바냐 로고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링 위에서 인생을 배우죠.” 박우동 변호사가 평소 훈련하는 최무배 체육관에서 운동을 마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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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잡스족, 생계형에서 성취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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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는 '개인의 평균 수명이 그들의 고용 기관 보다 더 길어질 것'이라고 전망하며 '그에 따라 남은 인생의 후반부를 위해 새로운 경력을 쌓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며,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하고, 더 많은 새로운 관계를 개발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런 움직임은 진작부터 일어나고 있었다. 주5일제 확산, 경기 침체, 고용 불안 등과 맞물려 '투잡족'이 급증했다. 당시 투잡족의 성격은 '생계형'이 많았다. 그야말로 먹고 살기 위한 1차적인 목표 때문에 투잡족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요즘에는 경제적인 목표 보다 자아실현을 이루기 위해 다른 일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돈을 벌고자 하는 목적 보다 똑같이 주어진 시간 동안 남들보다 두 배 더 알찬 인생을 가꿔나가기 위해 투잡을 선택하는 것이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즐거운 인생'에는 잃어버린 꿈을 찾아 떠나는 남자들이 등장한다. 이런 사람들이 영화 속에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현실 속에 이들이 있다.
세계적인 기업 마이크로소프트 마케팅팀에서 근무하는 조성우 과장은 주말마다 홍대 클럽에서 DJ로 변신한다. 시인 성기완씨는 시 쓰는 일 외에도 대중음악 비평가, 라디오 DJ, 대학과 문화 아카데미에서 강사로 활동하며 '3호선 버터플라이'라는 록 밴드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로도 맹활약하고 있다.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근무하는 이승우 캡틴은 본업인 호텔리어 외에 한국관광대학 호텔경영학 강사, 창업컨설턴트라는 직함을 더 가지고 있다.
이번 주 리빙앤조이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두 얼굴의 사람들'을 만나봤다.
K-1 경기에 도전하는 변호사, 음반을 내고 가수로 활동하는 치과 의사, 투잡으로 시작한 사업으로 지금은 연 10억원의 수업을 올리고 있는 청년 사업가들이 그 주인공이다. 또 '완벽한 이중생활'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비결과 투잡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인 창업의 성공 비결도 알아봤다.
자, 당신은 인생의 후반전을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가.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즐겨보자. 그렇게 즐기는 것만으로 자연스레 당신 생의 승리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주어진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이란 조건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이렇게 똑 같은 조건 속에서도 사람은 다양한 부류로 나뉜다. 한 사람 몫 살기도 버거워 하는 사람과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더 풍성하게 사는 사람들로.
여기 남 보다 두 배 더 멋지게 사는 인생들이 있다. 일명 ‘두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다.
■ 두 개로는 아쉬운 ‘포잡족’ 강형주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창대했다.’
이 성경 구절은 아마 이 남자를 두고 나온 말일 게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강형주(36)씨는 현재 무려 4개 업체를 운영하는 청년 사업가다.
그를 지금의 자리로 이끈 것은 다름 아닌 투잡스. 그는 레저 벤처기업인 ‘넷포츠’를 운영할 때부터 사업을 병행했다.
당시 그가 부업으로 도전했던 사업은 곱창집이다. 그런데 평범한 곱창집이 아니었다. 바의 형태를 도입해 ‘바(Bar)곱창’이란 이름으로 시작했다. 깔끔한 분위기에 손님들이 불어났고, 나중에는 28개의 프랜차이즈를 낼 정도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만약 그가 바곱창의 성공에 안주했다면 지금의 그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후에도 기업형 웨딩브랜드인 ‘줄리아프로담’, 맞춤양복 ‘안드레야바냐’ 등을 시작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줄리아포르담은 청담동 본점을 포함해 12개 매장, 안드레야바냐는 30개 매장이 성업 중이다. 특히 안드레야바냐는 미국과 중국에까지 진출해 세계 시장에까지 진입했다. 얼마 전 6월말에는 스위스의 티 브랜드인 ‘리콜라티’를 라이선스로 들여와 서울 압구정동에 리콜라티하우스를 오픈했다.
그가 투잡스에 처음 도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강 사장은 “회사에서 일할 때도 나름대로 보람은 있었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라고 할까. 회사가 모든 걸 보장해주진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회사를 다닐 때에도 강 사장의 머리 속에는 항상 사업 아이템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강 사장은 “당시에도 여러 사업 아이디어가 많았는데 회사 때문에 접은 경우가 많았다”며 “그래서 투잡스 형태로 부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부업 수입이 언제부터인가 본업 수입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강 사장은 그때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 뒀다. “회사만 다니기엔 젊음이 아까웠다”는 게 그 이유다.
이제 그는 4개 업체의 사장이다. 어떻게 그 많은 업체를 운영하는 것일까. 그 비결은 바로 사람에 있었다. 강 사장은 “믿을만한 직원들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그들은 모두 예전 직장 동료들”이라고 귀띔했다. 투잡스를 하며 끈을 놓지 않았던 직장생활에서 형성된 인적 네트워크가 훗날 사업을 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투잡스 경험은 이래저래 그의 사업 성공에 탄탄한 기초를 제공해준 것이다.
■ 변호사 파이터 박우동
세계적으로 내로라 하는 격투기 선수인 미르코 크로캅의 본업은 격투기가 아니다.
그는 현재 크로아티아의 국회의원이다. 평소엔 양복 차림으로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치는 그가 링 위에서는 야수로 돌변한다.
국내에도 크로캅을 닮은 사나이가 있다. 평소엔 어엿한 변호사로 일하며 링 위에서는 종합격투기 선수로 활약하는 주인공은 바로 현재 법무법인 정연에서 일하고 있는 박우동(34) 변호사다.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해 지난 200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2004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 그가 격투기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단순한 취미 정도가 아니다. 아마추어 경기이긴 하지만 정식 경기에도 출전한 바 있는 어엿한 선수다. 그동안 세 번이나 출전해 현재까지 1승 2패를 기록중이다. 박 변호사는 “골프에 미쳐 프로골퍼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랑 비슷한 케이스다. 내게 격투기란 취미 이상이다. 자아실현의 한 방편”이라고 말했다.
잘 나가던 변호사가 왜 이런 과격한 운동에 입문했을까. 그렇게 바라던 사법시험에 합격해 원하던 일을 하게 됐지만, 그는 매일 반복되는 생활에 염증을 느꼈다. 박 변호사는 “쳇바퀴 돌아가듯 사는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어 격투기에 도전했다”며 “TV로 격투기 경기를 보다 이거다 싶어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고 배우다 보니 내 실력을 무대 위에서 냉정하게 평가해보고 싶어져 경기에까지 출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링 위에 서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가족의 반대가 심했다. 운동으로 할 때에는 ‘그러려니’ 했던 아내도 시합에 출전한다고 할 때엔 심하게 반대했다. 박 변호사는 “아내 설득하는 게 힘들었다. 그런데 경기에 나가 크게 다친 적도 없고 본업을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런지 지금은 하거나 말거나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라며 웃었다.
박 변호사는 “시합에 나갈 때 가장 힘든 점은 시간 관리”라고 했다. 아무래도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저녁 때 회식이 잦기 마련이다. 박 변호사는 시합을 앞두고 일체의 저녁 약속을 점심 시간으로 돌렸다. 그리고 본업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훈련도 아침, 저녁, 주말에만 실시했다.
그렇게 운동을 심하게 하면 아무래도 본업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박 변호사는 “오히려 운동하는 것 자체로 복잡한 법률 일로 받았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며 “두 가지 일이 서로 상승작용을 했다. 운동을 열심히 할 때 오히려 일이 더 잘됐다”고 말했다.
최근 직장을 옮긴 박 변호사는 “요즘엔 새 직장에 적응하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빠 시합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두 번 정도 더 시합에 도전할 생각이다. 지금 몸무게가 77㎏인데 내년에 70㎏까지 감량해 라이트급에 출전하겠다”고 말했다.
■ 노래하는 치과 의사 이지
낮과 밤의 얼굴이 다른 여자가 있다.
낮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로, 밤에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방송인 겸 가수로 살아가는 이 여자의 이름은 바로 이지(34ㆍ본명 이지영).
그녀의 욕심은 끝이 없다. 치과 원장에 앨범 두 장 낸 가수에, 방송 일만도 벅찰 듯 한데 얼마 전엔 책까지 출간해 작가로 데뷔했고, 요즘에는 정식 화가로 데뷔할 생각으로 그간 틈틈이 그려놓은 미술품들을 모아 전문가들의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까지 7장을 모았는데, 3~4장을 더 준비해 내년 5월쯤 조그만 개인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그녀는 미술이 자신의 본업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요즘 치과는 치료에서 심미적인 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며 “현대 치과 의사와 미술적 심미안은 이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본업에 소홀해지지 않을까. 이지는 이런 걱정을 일축했다. 그녀는 “전문직의 경우, 방송 출연하고 그러면 ‘바람 들었다’, ‘교만해졌다’는 말을 듣기 쉬운데, 그런 말 듣지 않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가지 희생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개인적인 생활이다. 이렇게 예쁘고 능력 있는 그녀가 아직도 ‘노처녀’란 사실은 놀랍다. 30대 중반인데 결혼 상대자는 커녕 교제하는 남자친구 조차 없다. 다 일 욕심 때문이다. 그녀는 “개인 생활이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그것 빼고는 다 좋다”며 현재 생활에 만족해 했다.
이지는 “만약 가수나 방송 일을 하지 않았다면 많이 나태해지고 타성에 젖었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과 방송 등 다른 분야 일을 하면서 치과 의사로서 사는 삶에 부족한 부분이 채워졌다”며 투잡 인생을 예찬했다.
입력시간 : 2007/10/3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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