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간 한지를 재료로 추상을 그려온 함섭 화백이 3년 만에 서울 강남 청담동 소재 박영덕 화랑에서 개인전을 연다. 한지를 소재로 쓰는 작가들은 많지만 함섭 화백은 한지는 물론 닥나무 껍질까지 활용하면서 차별화를 시도해 왔다. 닥나무의 올이 그대로 도드라져 투박한 듯 그래서 더 자연스러운 것이 작품의 특징이다. 그는 한국적인 소재와 서양의 형식적 미학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내면서 유화ㆍ아크릴화 등 서양의 그림과 동등한 평가를 받고 있는 한지화의 가능성을 키워간다.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가 한지로 눈을 돌린 것은 동양적인 독창성을 찾기 위한 실험정신에서 비롯됐다. 재료에 대한 그의 관심은 전통방식으로 한지를 직접 만들고 천연 염료로 염색을 하기에 이른다. 얼마 전 한의사인 사위의 도움을 받아 작품 보존을 위해 한약 재료인 천궁을 섞는 등 그의 실험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는 “유화를 그려서 해외에 들고 가면 ‘함섭이 서양사람 그림을 들어주네’라는 말 밖에 듣지 못한다”며 “서양의 눈길을 끌 수 있는 방법을 우리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독특한 그의 화풍은 해외에서 더 인기다. 그의 작품은 98년 이후 참가하는 아르코ㆍ?른ㆍ시카고ㆍ샌프란시스코 등 세계 주요 아트페어에서 매년 호평을 받고 있다. 세련되게 잘 다듬어진 매끈함보다는 자연스럽고 향토적인 느낌이 국제적인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입증해 냈다. 전시에는 최근작 20여점이 선 보인다. 3년간 작업한 그의 작품은 예전보다 더욱 밝아지고 화려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지와 닥종이를 전통 색채인 오방색(청ㆍ적ㆍ황ㆍ흑ㆍ백)으로 염색하고 거기에다 고서를 붙여 자르고 두들기는 작업과정을 통해 새로운 조화를 추구해 낸 결과다. 인간사 일장춘몽이라는 큰 주제를 갖고 있는 이번 전시에는 농악의 신바람과 탈춤의 춤사위 등 한국적인 감성이 추상적으로 드러나 있다. 전시는 24일부터 9월2일까지다. (02)544-8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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