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소목은 수비적 착점이었다. 귀를 소목으로 점령해 놓으면 그 자체로 대략 10집의 실리가 보장되며 어떤 식으로 상대가 접근해와도 근거가 박탈되는 일은 없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소목은 지난 2백년 동안 일본의 프로기사들이 애용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소목은 자세가 낮으므로 공격력이 부족하고 큰 모양을 얽기 위한 잠재력도 다소 뒤떨어진다. 바둑판 전체를 스피드 있게 휘어잡기 위해서는 화점이나 고목이 유망하다는 견해가 고개를 쳐든 것은 신포석이 유행한 1940년 무렵이었고 그 정점에 우칭위엔과 기타니 미노루가 있었다. 우칭위엔과의 쟁패에서 패한 기타니는 후일 기타니도장을 열어 일본 최대의 프로기사 양성소를 만드는 데 성공하는데 그가 극단적인 세력바둑을 버리고 실리주의자가 된 것은 소목의 효용이 화점이나 고목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에서 기인한다. 소목은 허물어지지 않는 성과 같은 것이므로. 그런데 지난 15년 동안 조훈현과 이창호 사제가 화점으로 세계를 평정했고 소목의 가치는 다시 의혹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두 사람의 영향으로 일본과 중국의 고수들도 화점을 빈번하게 사용했다. 화점이야말로 위풍당당하고 역동적이고 공격적이라는 인식이 넘쳐흘렀다. 그런 프로 기단에 19세의 최철한이 다시 소목을 들고 나타나 세계랭킹 1위 이창호를 연거푸 쓰러뜨렸다. 소목이라는 이름의 오래된 병기. 최철한은 그 가운데서 최철한정석을 신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애기가들은 무조건 그것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153수 이하줄임 흑5집승. /노승일ㆍ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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