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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서울을 서울로
입력1999-04-14 00:00:00
수정
1999.04.14 00:00:00
林鍾乾편집국차장 IMJK@SED.CO.KR서울시가 서울의 중국어 표기를 정자체인 한성(漢城)에서 간자체인 水+又城으로 바꾸었다는 기사가 최근 언론에 실렸다. 그 기사는 오래 된 나의 기억 하나를 떠올려 은근히 부아를 치밀게했다.
그 기사가 되살려놓은 기억은 85년 당시 명동에 있던 자유중국 대사관의 직원이 내뱉은 한마디였다.
『당신네 정부에서 만들어 놓은 한자로 된 서울관광안내책자를 보시요. 거기에도 漢城이라고 돼 있을거요』
그때 기자는 동남아지역 여행을 다니면서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 등 화교권 국가의 공문서나 여행안내서 등에 서울의 표기를 漢城(한청)으로 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귀국한뒤 자유중국 대사관에 이유를 알아보던 중이었다.
타이완대사관 직원의 설명은 구구했다. 먼저 모든 중국인들이 서울을 「漢城」으로 쓰고 또 「한청」으로 부르고 있으니 어쩌냐는 것이었다.
또 「서울」로 발음되는 한자어가 마땅한게 없다는 것이었다. 영어로는 「SEOUL」로 표기되니 문제될게 없지 않느냐는 얘기도 덧붙였다. 군색한 변명을 늘어놓다가 마지막으로 던진 말이 바로 앞서의 한마디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머리가 띵했던 기억이 새롭다. 정곡을 찔렸다는 것은 그런때를 일컬음이리라.
한 나라의 국명이나 지명이 외국인에 의해 다르게 불리는 예가 없는 것은 아니다. 버마가 국명을 미얀마로 개명했으나 서방국가들은 여전히 버마로 부른다. 에스파냐가 영어로는 스페인으로, 이탈리아의 로마가 영어로는 롬으로 불리는 것등도 같은 범주에 든다.
그러나 외국의 예는 우리식으로 치면 한양과 한성의 차이, 또는 영어의 코리아와 불어의 꼬레의 차이라고 할 만하다. 어의상의 차이가 아니라 발음상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할때 서울과 漢城은 발음의 차이는 물론이고 어의나 시대적인 의미도 전혀 다르다. 서울에는 해방된 조국의 수도이름을 순수 우리말로 짓는다는 자주성의 의미까지 담겨있다.
글자가 너무 많아 없애야할 정도인 중국말 가운데 서울로 표기·표음되는 한자가 없다는 것은 변명일 뿐이다. 서울이 표기되지만 어의(語義)가 나쁜 것이 많다는 것도 변명이기는 마찬가지이다. 倫敦(런던) 華盛頓(워싱턴)같은 지명은 물론 可口可樂(코카콜라)같은 상품명까지 발음과 의미가 상통하도록 글자를 잘도 골라 작명하는 그들이 아니던가. 자국민의 혼동을 걱정한다지만 자국 이외의 어디에서도 서울을 한성으로 아는 나라가 없으니 외국에 나가 겪게될 혼동은 혼동이 아니란 말인가.
그들이 漢城을 고집하는 데는 글자풀이대로 漢나라 때의 일개 城쯤으로 간주하고픈 어설픈 대국주의의 심사가 깔려있는 지도 모르겠다.
漢城이 漢陽과 함께 조선시대 서울의 이름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서울은 신라시대 때 「서라벌」에 어원을 둔 순수 우리말 도읍 이름으로 광복후 수도의 이름으로 공식선포된 이름이다.
서울은 한국의 얼굴이자, 인구 천만명이 넘는 세계 굴지의 도시이다. 세계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한국의 수도를 서울로 알고, 또 서울로 부르고 있다.
유독 중국이나 화교계 국가에서 100년전 조선시대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관행이란 이름의 시대착오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외교관례에도 없는 일이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을 청나라때 이름인 옌징(燕京)으로 부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 시대착오 만큼이나 한심한 것이 우리 정부의 이 문제에 대한 대응이다. 정부수립후 줄곧 방치해 왔고, 중국과 수교한지 7년이나 됐음에도 여전히 그 모양이다. 그리고 정부부터 아무 거리낌없이 서울을 漢城으로 표기하고 있으니, 어떻게 남을 탓할 수 있으랴.
김대중(金大中)정부가 들어선후 이 문제가 거론되는 듯 하더니 감감 무소식이다. 지난해 金대통령의 중국방문때 정식 거론한다는 얘기가 있어 관심이 쏠렸으나 역시 꿩궈먹은 소식이다.
옛 자유중국 대사관 직원의 뼈아픈 지적처럼 이 문제는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이들 국가에 대해 서울을 서울로 쓰고, 불러달라고 요구해야한다. 그들이 관행운운하며 발뺌을 할라치면 같은 한자문화권의 입장에서 멋있는 서울의 한자이름을 지어 스스로 공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지난 반세기동안의 정부의 인식변화가 고작 정자(正字)에서 간자(簡字)까지밖에 안갔다는 현실이 문득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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