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회간접자본(SOC)의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 기준을 15년 만에 상향 조정하고 지역균형 발전에 대한 배점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국내 경제의 규모가 커진 현실을 반영하고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성이 떨어지는 지방 국책사업이 예비 타당성 관문을 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사업비 기준을 상향 조정하게 되면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국책 대상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각종 개발사업이 지역 균형발전을 구실로 정치 논리에 휩쓸릴 우려가 크다. 이에 따라 경제성이 없는 각종 지역개발 사업이 손쉽게 예비타당성 관문을 통과해 재정 건전성 훼손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 벌써부터 지방공약 이행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연유도 여기에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20일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를 시행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조사 기준을 현 상황에서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어 여러 부작용이 나오고 있다"면서 "대상사업 선정 기준 및 수도권과 이외 지역의 불균형 등 드러난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기재부는 관련 용역을 의뢰한 상황이다.
앞서 최경환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국회 출석해 예비타당성 제도를 손질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최 경제부총리는 지난 8일 인사청문회에서 조현룡 새누리당 의원이 "예비타당성 조사 공사비 기준을 올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자 "공사비 인상 등 요인이 있는데도 1999년 도입된 예비타당성 조사 기준을 유지하다 보니 지나치게 많은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에 들어가고 지역균형 발전 문제도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대답했다.
이와 관련 정부 안팎에서는 지난해 11월 김광림 새누리당 의원 등 국회의원 10명이 국가재정법 일부 개정안이 기준선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개정안은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면서 국고지원 300억원인 현행 기준을 총 사업비 1,000억원이고 국고지원 600억원 이상인 신규사업으로 바꿔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4대강 사업에서 보듯 예비타당성 조사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마당에 지역균형발전을 명목으로 정치권의 민원성 사업을 진행할 경우 국가 재정손실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현행 제도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특별한 사업에 한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지난해 국회예정책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타당성 없다'는 판정을 받은 23개 SOC 사업이 현재 진행 중이다. 세금이 잘 걷히지 않아 나라 살림이 빠듯한데도 정치 논리에 휩쓸려 예산을 낭비하는 사업이 허다하다는 방증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지역공약 이행계획 중 신규 SOC 사업은 27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이미 예비타당성 조사를 마친 10개 중 9개는 '경제성 없음' 판정을 이미 받은 바 있다.
민간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동남권 신공항 사업도 2007년 이미 백지화됐다가 대선 공약으로 다시 부상한 대표적인 포퓰리즘 사업"이라며 "세수결손이 10조원에 달하는 마당에 수요도 부족한 선심성 공약사업을 진행한다면 재정손실을 가속화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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