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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 역사를 다시 쓴다
입력2004-08-27 05:13:40
수정
2004.08.27 05:13:40
1936년 8월9일 베를린 올림픽스타디움.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게르만의 땅에 건너온 24세 양정고보생 손기정은 거친숨이 차오르는 30㎞ 지점 비스마르크 언덕을 넘어 민족의 혼을 일깨웠다.
이후 56년이 흐른 1992년 8월9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스타디움.
가슴에 선명한 태극마크를 단 황영조(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 감독)가 반세기전 일장기를 달았던 손 선생의 한을 풀며 몬주익 언덕을 넘어 결승점에서 양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로부터 다시 12년이 흘러 2004년 8월30일 새벽 2시(이하 한국시간)를 조금 넘긴 시간 근대올림픽의 발상지 아테네 시내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
현지시간 저녁 8시를 넘겨 막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말발굽 모양의 경기장에 지난 14년 간 한국 마라톤의 환희와 좌절을 양 어깨에 짊어지고 달려온 34살의 베테랑마라토너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 검은 트랙을 돌기 시작한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24.삼성전자)는 이제 꿈을 꾸며 아테네 북동쪽 40㎞ 마라톤 평원의 시발점인 소도시 마라토나스의 스타트라인에 선다.
2002년 11월 15일 서울 일원동 삼성병원 고(故) 손기정 선생의 빈소를 찾아 지그시 눈을 감았던 그는 당시 자신에 전해졌던 손 선생의 유지를 떠올리며 쉼없는 담금질로 탄탄하게 단련된 철각을 서서히 움직인다.
'108년 만의 귀향'으로 불리는 아테네올림픽에서 마지막 영웅을 가리는 순간.
"마라톤 인생의 전부를 걸었다"고 출사표를 던진 그의 눈 앞에 올 연말 세상에나올 둘째를 가진 동갑내기 아내 김인순씨와 갓 돌을 지난 아들 우석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자랑스러운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던 철석같은 약속이 35℃의 무더위와 정면을 향해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표고차 250m의 가파른 언덕을 넘어 계속 달려야만 하는 자신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 98년 로테르담마라톤과 2000년 도쿄마라톤 한국기록 수립, 2001년 반세기 만의 역사적인 보스턴마라톤 우승, 98년 방콕과 2002부산아시안게임 2연패 등 그 누구보다 화려하지만 그만큼 굴곡도 많았던 이봉주의 마라톤인생이 이제 종착역 도착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4월7일부터 대전 계족산-중국 쿤밍-강원도 횡계-스위스 생모리츠-그리스시바로 이어져온 144일 간의 금빛 프로젝트도 마침내 열매를 맺을 순간이 다가왔다.
생애 32번째 풀코스 완주에 도전하기까지 그동안 뛰어온 훈련거리는 지구를 네바퀴 반 도는 15만8천㎞.
그 중에서도 아테네 입성을 앞두고 실시된 훈련은 가장 혹독했다.
강원도 횡계 대관령 옛길에서 40일 간 달리고 또 달려 소화한 거리주 훈련 합계만 1천500㎞.
마라토너로서 이미 전성기를 넘겼다는 평가에 아랑곳없이 이번처럼 철저히 훈련을 소화한 적도 없다.
이봉주는 마라톤 여제 폴라 래드클리프(영국)를 넘어뜨린 사상 최악의 난코스에서 쉽사리 승부를 걸지 않는다.
세계 최고의 철각들이 나선 최후의 이벤트에서 승부는 어차피 지옥의 15-33㎞오르막 구간을 지나고 난 뒤 갈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봉주는 33㎞까지 선두권을 유지한 다음 다소 완만한 업다운이 반복되는 마지막 9㎞에서 승부수를 띄운다는 전략이다.
오인환 삼성전자마라톤 감독은 "초반 페이스에 말려들면 안된다. 그렇다고 초반에 뒤처지면 더욱 곤란하다. 선두권을 형성하며 조심스럽게 달리다 30㎞를 넘어서면서서히 승부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3㎞를 더 뛰면 승부가 결정날 순간이온다. 그 때 스퍼트로 승부를 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2천500년 전 페르시아군대와 사투를 벌인 끝에 올린 승전보를 전하러 아테네로한숨에 달려오다 쓰러졌던 그리스 병사 필리피데스의 숨결이 깃든 클래식 코스.
1896년 제1회 근대올림픽에서 그리스 목동 스피리돈 루이스가 2시간58분50초에달린 길을 '봉달이' 이봉주가 다시 뛴다.
외딴 섬처럼 홀로 고독한 훈련에 몰두해온 이봉주는 27일 아테네 북쪽 파르티나에 있는 올림픽선수촌에 입촌해 동료 태극전사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 (아테네=연합뉴스) 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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