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조선업계에 저가수주의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경기침체로 선주사들의 발주가 뚝 끊긴 가운데 중국 조선업체에 이어 일부 국내 조선업체마저 저가수주에 나서고 있다. 신규수주를 전혀 못하는 것 보다 낮은 가격에라도 선박을 수주해 선수금을 활용하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해당 업체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저가수주 경쟁이 확산될 가능성도 우려되고 있다. 13일 세계적인 조선ㆍ해운시장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4주 연속 152로 유지됐던 선가지수가 지난 10일 3포인트 하락한 149를 기록했다. 선박의 가격을 나타내는 선가지수는 지난달 말부터 152포인트를 지속적으로 유지돼 선가지수 하락세가 드디어 바닥을 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4주만에 다시 하락세로 전환된 것이다. 이는 중국 조선업계를 중심으로 저가수주가 지속되고 있는데다, 최근 국내 일부 조선업계도 가세한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선종별로는 중국 조선업체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탱커와 벌크선의 신조선가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초대형유조선(VLCC) 신조선가는 1억1,500만 달러, 케이프사이즈 벌크선 신조선가는 6,500만 달러를 기록해 각각 1,000만 달러, 400만 달러 하락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한달 동안 신조선가가 안정세를 보여 바닥을 확인하는 듯 했지만 더 낮은 바닥으로 떨어졌다"며 "하반기에도 대규모 발주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수주잔량이 부족한 중국 및 국내 일부 조선업체들의 저가수주 경쟁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과 한국의 조선업체들이 본격적인 저가수주에 나선 것은 지난달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한국의 조선업체들은 세계적인 발주가뭄 속에서도 올들어 매달 2~15척 가량을 수주해왔다. 하지만 국내 조선업계는 지난 4, 5월 단 한척의 배도 수주하지 못했고, 중국 역시 지난 5월 올들어 처음으로 수주액 제로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중국 업체들이 지난 6월부터 저가수주의 포문을 열었고, 이후 일부 국내 업체들도 가세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조선업계에서는 지난 5월 이후 국내 조선업체가 수주한 탱커선, 여객선 등에 대한 저가수주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반면 고가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일본은 지난 2월 이후 현재까지 단 한 척의 배도 수주하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대형 해양제품 발주가 집중되어 있는 올 하반기. 벌크선, 탱커선, 여객선 등은 수주규모가 적기 때문에 낮은 가격에 수주를 해도 전체적인 수익성에는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다. 하지만 수주규모가 수조원대에 달하는 해양제품 분야에서 저가경쟁이 벌어질 경우 수익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또한 해양제품은 일반 상선과 달리 각 제품마다 고유의 새로운 설계, 자재, 기술 등이 투입되기 때문에 낙찰된 가격에 따라 마진이 크게 달라지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국내 대형 조선업체 한 관계자는 "해양제품 제작은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경영환경 속에서 수주를 했어도 생산과정에서 자칫 잘못하면 손해를 볼 수도 있는 분야"라며 "만약 올 하반기에 해양제품 시장에서마저 저가경쟁 현상이 나타난다면 이 분야에 강세를 보이고 있는 국내 조선업체의 피해가 막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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