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점 한 곳에 부지점장 3~4명… 직무 구별 없고 연령대도 높아
인력구조, 항아리 형태로 가속
희망퇴직보다 임금피크제 선호… 관리비용 증가로 자리는 줄어
시중銀, 뾰족한 수 없어 골머리
시중은행 수도권 지점에서 부지점장만 7년째인 이모(49)씨는 요즘 출근만 하면 답답하다. 길어야 2~3년이면 지점장이 될 것으로 믿었는데 인사적체가 너무 심해 희망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윗선에서는 성과를 보여야 지점장이 될 수 있다며 닦달하지만 같은 이씨가 근무하는 지점에 후배 부지점장이 2명이나 더 있어 지점 분위기상 성과 경쟁을 하기도 힘들다. 이씨는 "불과 6~7년 전만 해도 40대 지점장이 많았는데 지금은 50대가 돼도 지점장이 될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인사적체가 심하다"며 "승진을 하려면 윗선에서 빨리 퇴직을 해야 하는데 요즘 같은 불경기에 그러한 상황을 바라기도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은행원들이 '은행의 꽃'으로 불리는 지점장 자리를 차지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인터넷뱅킹 활성화로 지점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데 승진 대상자는 오히려 늘어나 은행들의 고민도 깊어지는 모습이다.
◇지점 한 곳에 부지점장만 3~4명=19일 금융계에 따르면 우리은행의 경우 지난 9월 말 현재 992개 지점을 갖고 있으며 영업 본부 부부장급인 부지점장에 해당하는 인력은 2,300여명이다. 한 지점에 2~3명의 부지점장이 함께 근무하는 사례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896개의 지점을 가진 신한은행은 부지점장 수가 1,313명으로 그나마 양호하다. 한 시중은행 강남본부 지점장은 "큰 점포일수록 부지점장을 3~4명씩 배치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며 "다만 부지점장들은 대부분 전산과 관련된 기초 업무를 하지 않고 고객 응대와 같은 업무를 주로 하는 편이라 실제 점포 운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국민은행은 훨씬 심각하다. 국민은행은 출장소를 제외한 지점 수가 1,037개이며 부지점장이나 본점 팀장에 해당하는 인력은 4,300여명 수준이다. 지점당 서너명의 부지점장이 배치되는 셈이다. 현재 국민은행 인력구조는 L0(초대졸)가 4,107명, L1(계장·대리급) 4,185명, L2(과·차장급) 6,205명, L3(부지점장·팀장급) 4,863명, L4(고참 지점장급) 544으로 전형적인 항아리 구조다. 시중은행들은 이들 부지점장에게 개인금융 부지점장, 여신담당 부지점장, 창구담당 부지점장 등의 직함을 주며 각자의 역할을 강조하지만 직무가 딱히 구별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점장과 부지점장의 나이 차이가 1~2살밖에 나지 않거나 오히려 부지점장이 나이가 많은 지점도 많아져 업무 진행이 매끄럽지 않은 사례도 종종 있다.
◇고민 깊어지는 은행들=시중은행의 인사 담당자들도 인사적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은행들은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직원의 전직을 지원하는 등의 방안을 고민 중이지만 자영업이 포화 상태라 밀어내기가 쉽지 않다. 한 시중은행 인사담당자는 "일선에 고참급 인력을 배치했다는 것은 현장에서 뛸 수 있는 인력풀이 그만큼 줄었다는 것"이라며 "신입직원 중에는 피라미드형의 인력구조를 생각하고 입행하는 경우도 종종 보여 이들의 근무의욕을 끌어올리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희망 퇴직에 드라이브를 걸기도 쉽지 않다. 윤종규 회장 취임으로 희망퇴직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은행은 "희망퇴직은 노사합의가 선결 조건"이라며 유보적인 입장이다. 단 강정원 행장 시절인 2005년 2,200명, 민병덕 행장 시절인 2010년 3,200명 등 신임 행장 취임에 맞춰 대규모 희망퇴직을 받은 선례를 감안하면 가능성은 열려 있다. 예금보험공사의 관리를 받는 우리은행은 특별퇴직금에 제한이 있어 인위적 인력조정이 더 어렵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특별퇴직금이 여타 은행의 70~80% 수준에 불과하니 임금피크제를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며 "정년이 다가오는 직원들에게 나가라고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지점당 수익 악화와 관리비용 증가는 가뜩이나 부족한 지점장 자리를 더욱 줄일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지점당 총 수익은 지난해 201억원으로 4년 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반면 지점당 판매관리비는 4년간 2억4,000만원 늘어난 26억6,000만원으로 증가했다. 임금피크제 도입이 확산되면 이러한 인사 적체는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중은행 중에서는 국민·우리·하나·외환·기업은행이 만 55세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점장이 되려면 최소 20년을 넘게 근무해야 하는 데다 지점장이 되지 못하고 정년을 맞이하는 경우도 눈에 종종 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직급이 아닌 직무를 중심으로 한 인사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인사담당 고위 임원은 "여신이나 상품개발 등에 특화된 직원은 그 분야 전문가로 육성하되 직급을 유지하는 방안 등이 인사적체의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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