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복지정책이 결국 방향을 틀었다.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복지비용에 선(先)구조조정, 후(後)증세로 가닥이 잡혔다. 무상을 계속 고집하다가는 비어가는 나라곳간에 저소득층 등 정작 중요한 복지가 희생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선공약인 '증세 없는 복지' 원칙은 고수했지만 증세를 뒤로 미룸에 따라 무상보육 손질 등 선택적 복지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금 증세 얘기가 나오지만 우리 목표는 경제활성화를 통해 세수를 늘려 국민 부담을 주지 않고 해보겠다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증세는 마지막으로 선택할 카드이며 증세 이전에 세출조정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저성장이 현실화하는 상황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무상복지를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적 판단도 깔려 있다.
증세와 복지에 대해 엇갈렸던 여당 내 의견도 증세보다는 복지 다이어트를 통한 선택적 복지 쪽으로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의원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인 의견은 복지 수준은 원점에서 검토하되 과다·중복되거나 비효율적인 부분을 우선 조정한다는 입장"이라며 "증세 역시 자제하되 필요하면 검토한다는 쪽으로 모이고 있다"고 말했다. 증세 논의에 앞서 복지 구조조정이 우선이라는 의미다. 여당은 당론이 확정되면 야당과 함께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대책을 확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선택적 복지 쪽으로 여권의 의견이 모이고 있는 것은 나라곳간이 비어가는데 복지예산은 눈덩이처럼 계속 불어나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올해 예산은 375조4,000억원으로 이 중 복지 부문(보건·복지·고용) 예산은 115조7,0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보다 19조6,000억원이 늘어났는데 이 중 절반가량인 9조2,000억원이 복지 부문 예산이다. 전체 예산에서 복지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돌파한 것도 올해가 처음이다. 복지예산 증가율은 전체 예산 증가율보다 2~4%포인트 높다. 복지예산이 경직성 경비인데다 소득 수준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제공되는 무상복지 혜택이 늘어난 탓이다. 무상보육·무상급식·기초연금(노령연금) 등 3대 무상복지 예산은 지난 2011년 9조8,852억원에서 지난해 21조8,110억원으로 급증했다. 3년 동안 무려 120% 급증한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3대 무상복지 예산이 오는 2017년에는 29조8,370억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면 나라 살림살이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2012년부터 3년 연속 잠재성장률을 밑돌면서 세수 역시 3년 연속 펑크 났다. 올해 역시 저성장과 세수 펑크의 악순환은 반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정부와 여당이 선택적 복지를 본격화할 경우 3대 무상복지가 먼저 수술대에 오를 것으로 분석된다. 그동안 양적으로는 팽창했지만 소득 상위층까지 지급되는 등 낭비요인이 적지 않았던 만큼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면 더 필요한 곳에 예산을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무상보육의 경우 보육료와 양육수당을 줄일 경우 반발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여 무상급식이 우선 검토될 것으로 전망된다. 새누리당이 기재부와 복지부 등으로부터 제출 받아 분석한 자료에서도 무상급식을 소득 하위 70% 가구 자녀로 대상을 제한할 경우 매년 8,000억원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복지 구조조정과 함께 증세 논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3대 무상복지를 중심으로 복지 부문을 구조조정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중장기적으로 복지를 강화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세금을 더 걷는 게 맞다"며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복지를 위한 세원 확보는 필수"라고 지적했다. /세종=김정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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