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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 포커스] 엔저에 복잡해진 투자 셈법

■ 출렁이는 환율에 엔화예금도 대출상환도 머뭇<br>원엔 환율 18% 급락 불구… 엔화대출 잔액 4% 감소<br>예금도 늘지않고 되레 줄어<br>"환율 더 떨어질 것" 기대… 관망하는 투자자 많아져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에서 공작기계업체를 운영하는 이동건(가명) 사장은 최근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 사장은 2008년 8월에 운영자금 용도로 은행에서 5억엔(한화 50억원ㆍ2008년 8월 환율 1,001원 적용)의 엔화대출을 받았다. 900원 초반대에 머물던 원ㆍ엔 환율이 단기급등한 틈을 노린 선택이었다. 이듬해 원ㆍ엔 환율은 1,616원까지 치솟았다. 원리금 부담도 50% 넘게 늘어났다. 그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5년이라는 시간을 겨우겨우 버텼다.

그런데 최근 원ㆍ엔 환율이 급락하면서 엔화대출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전액 원화대출로 갈아타자니 왠지 환율이 더 떨어질 것 같고 버티자니 그동안 누적된 엔화대출 피로감이 너무 크다. 이 사장은 우선 총대출의 20%만 원화대출로 전환하기로 했다.

원ㆍ엔 환율이 높은 변동성을 보이면서 투자자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엔저(低) 현상'이 심화되면 엔화대출은 줄고 엔화예금은 늘어나야 한다. 실제로 시중은행들의 엔화예금ㆍ대출 동향을 보면 그러한 방향성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환율의 변동성에 비하면 예금과 대출의 증감폭이 크지 않다. 그만큼 고민이 크다는 얘기다.

10일 국민ㆍ우리ㆍ하나ㆍ기업ㆍ외환은행 등 5개 시중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현재 6,699억엔을 기록했던 엔화대출 잔액은 3월 말 현재 6,433억엔으로 3.97% 줄어드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원ㆍ엔 환율이 18.3% 급락한 점에 비춰보면 의외의 결과다. 환율이 18% 내리면 엔화대출의 원리금 부담 역시 그만큼 낮아진다. 결국 원리금 부담은 크게 줄었지만 이 틈을 타고 애증의 대상인 엔화대출 청산에 나선 곳은 많지 않다는 얘기다.

한 시중은행 외환사업부 부서장은 "엔화대출은 중소기업과 의료병원이 많이 받았는데 이들 중에는 900원대에 대출 받은 곳도 적지 않다"면서 "환율하락으로 반색하고는 있지만 생각만큼 원화대출로의 전환을 신청하는 곳이 많지는 않다"고 전했다.



팽배해진 원ㆍ엔 환율 추가하락 전망이 엔화대출자들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일본은행은 4일 대대적인 '양적ㆍ질적완화 정책'을 발표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2일 1,201원으로 단기고점을 찍었던 원ㆍ엔 환율은 1,140원대까지 떨어졌다.

한 시중은행 글로벌자금담당 부행장은 "원ㆍ엔 환율이 추가 하락한다는 것은 기정사실화돼 있다"며 "엔화대출 피로감이 극심한 일부 중소기업을 제외하고 많은 엔화대출자들이 최소 1,100원까지는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투자자들의 복잡한 셈법은 엔화예금에서도 관찰된다. 3월 말 현재 5개 시중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은 1,530억엔으로 지난해 1월 말(1,680억엔)에 비해 오히려 줄었다. 일부 은행에서는 엔화예금이 늘고는 있지만 의미 있는 증가세는 아니다. 외화예금의 주된 수요자인 자산가들이 절세효과를 노리고 주식형펀드나 브라질국채 등에 집중하고 있는 것도 엔화예금 정체에 영향을 미쳤다.

또 다른 시중은행 자금부장은 "엔화예금이 조금 늘고는 있지만 이는 평상시 수준과 별반 차이가 없다"며 "환율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워낙 커 투자자들이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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