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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엉망이더라도…/유장희 이대국제대학원장(송현칼럼)
입력1997-06-02 00:00:00
수정
1997.06.02 00:00:00
유장희 기자
우리나라 경제가 계속 어렵고 쉽게 회복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보는 사람들 가운데 정치불안을 그 이유로 드는 경우가 많다.그러나 정치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경제가 끄떡없이 잘 나갈 수도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경제부처·기업·국민들이 합심하여 경제라도 정상화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의 경제난은 그 뿌리를 우리 모두가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태만과 방심으로 일관해 온 데서 찾아야 한다. 세계경제가 무서운 속도로 변하기 시작한 8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외부의 도전에 응전하기 보다는 이를 가급적 회피하는 자세로 안이하게 대처해왔기 때문이다. 많은 국가들이 경제적 국경을 헐며 경제통합을 이룩해 나가고 있는 동안 우리는 외톨박이 경제로 고립화의 과정을 걸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들도 변화의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취약한 재무구조, 족벌경영, 낙후된 기술, 재래식상품 수출 등에 안주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정치분위기 운운하는 논리는 그동안 변화와 개혁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어려움의 주범을 정치로 떠넘기려는 일종의 책임전가라고도 볼 수 있다.
정치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정상적으로 굴러갔던 예를 우리는 많이 본다. 케네디 암살사건으로 정계가 엉망일때 미국경제는 호황을 구가했다. 존·메이저 영국총리가 정치적 곤경에 처한 중에도 영국경제는 힘찬 성장을 보였다. 록히드 사건 등으로 궁지에 몰린 다나카총리 시절 일본경제는 끄떡없었다.
문제는 정치권이 인위적으로 경제에 손을 댈때 발생한다. 인기회복을 노리고 기업인들을 매도한다든지, 평등이라는 구호아래 지나친 분배정책을 쓴다든지, 공익의 명분하에 기업을 국유화한다든지, 조세및 금융정책을 일부 정치권 위주로 펴나간다든지 하는 등, 권력을 배경으로 경제계에 자의적이고 독단적인 조치를 취할 때 경제는 멍들게 되어 있다.
대개 자본주의 국가에서 정치권이 경제에 손을 대는 이유는 세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정치자금을 동원하기 위해서다. 향후 모종의 특혜를 기약하면서 관련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거둬들인다. 둘째는 인기를 얻기 위해서다. 정치는 어디까지나 국민들로부터 얻는 표의 산술이므로 대중에 영합할 수 있는 정책이 있을때 이를 서슴지 않고 추진한다. 셋째는 권력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서다. 즉 정부관리들과 결탁하여 수많은 규제를 만들어내거나 기득권층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법률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정치권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길은 민주사회에 있어 사실상 별로 없다. 국민이 뽑아 권력을 위탁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임기가 남아 있는 한 어쩔수 없다. 탄핵이란 장치가 있으나 실제로는 활용된 일이 거의 없다.
따라서 정치가 혼란할 때 경제라도 살릴 수 있는 길은 국민 모두가 스스로의 생업에 전력을 기울이는 일이다. 국민 각자는 냉철한 눈으로 정치권을 감시는 하되 지나치게 심리적 동요를 보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음 선거에서 강하게 자기 의사표시를 하면 된다. 기업인들도 정상적인 기업활동에 전력을 기울이면 되는 것이다. 정치권의 혼란을 혹시라도 악용하여 「렌트」추구행위를 강화해서는 안될 것이다.
다행히도 최근 몇몇 경제단체에서 정치권의 자정을 호소하면서 앞으로는 절대로 자금공여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잘된 일이다. 선언에만 그치지 말고 이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스스로의 장치를 개발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앞으로 9개월,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정치인들을 제외한 우리 모든 국민은 해야 할 일이 있다. 먼저 경제관련 정부부처 공무원들의 탈정치 결의가 중요하다. 경제원리에 충실하면서 인기위주의 정치적 논리가 끼여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업과 국민도 기죽지 말고 열심히 생업에 종사해야 할 것이다.
역사의 순서는 참으로 준엄하다. 경제가 앞장서고 정치가 뒤따라온 우리의 근대사는 지금 흐트러진 정치를 뛰어넘어 경제가 또 한차례 국운을 일으켜 세워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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