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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에서 사이버로드로/양평 편집위원(데스크 칼럼)

『문명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본지에 연재된 「인터넷 교역시대」의 화두다.인터넷 교역이 세계사에 지각변동을 몰고 온다는 이 기사의 두번째 시리즈에는 그 힘이 핵무기에 버금한다는 대목이 나와 가벼운 논란을 일으켰다. 새로운 시대의 등장에 너무 파괴적이고 과장끼도 있다는 지적이었다. 기자도 그 순간엔 동감이었으나 다시 한번 기사를 읽어보자 생각이 바뀌었다. 첨단과학으로 무장한 상업의 파괴성을 뒤늦게 깨우친 것이다. 「전자상업」(Electronic Commerce)이라는 뜻의 인터넷교역은 말그대로 컴퓨터를 통해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다. 상인과 고객이 만나지 않으니 상점은 넓은 매장이나 창고가 필요없고 기업들은 고객을 찾아나서지 않으니 대규모 판매조직이나 해외지사가 필요없다. 따라서 그것이 뿌리내릴때 상가 아니 도시의 모습은 1945년의 히로시마와 1955년의 그것처럼 딴판이 될것이다. 굳이 트집을 잡자면 그것은 원폭보다 그 ABC형제인 화학무기나 생물학무기에 가깝다는 정도다.인터넷교역은 백화점같은 유통시설을 삼풍백화점같이 주저앉히기 보다는 소리도 없이 고객이라는 「인명」을 축낸다. 이제 백화점들은 2차대전에서 위용을 자랑하던 거함거포들이 미사일에 밀려 자취를 감춘 사실을 되새겨야 할것이다. 모든 물건을 다 갖추고 있다는 뜻의 「백화점」은 큰 전함에 갖가지 무기들을 싣고 적을 찾아 다니는 전술같은 3차원적인 상술이다. 전함들이 모습을 변신하듯 백화점들도 인테넷이라는 미사일의 공격에 약한 점포들을 정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따라서 백화점들의 간판이름과는 상관없이 그 실명은 「칠십화점」으로 「오십화점」으로 줄곧 바뀔 것이다.그 추세를 거스르는 백화점들은 자칫 20세기 이전의 삶을 보여주는 민속박물관으로 구실이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교역의 의미는 이런 백화점차원을 넘는다. 국제교역이라는 차원에서 그것은 실크로드시대로부터 사이버로드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시점에 2천1백여년전의 실크로드를 들먹이는 것이 새삼스럽지만 오늘날의 다국적기업을 비롯해 지금까지 세계에 등장한 모든 교역방식은 실크로드의 패러다임안에 가둘 수 있다. 근대적인 동서교역의 길을 닦은 식민주의시대의 유럽 상선들도 낙타대신 배를 탄 해상 캐러밴일 뿐이다. 그들은 실크로드를 개척했던 장건의 기마병 대신 포함을 동원했을 뿐 주문받지 않은 상품을 팔러 나선 보따리장사의 틀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보다 나은 것이 다국적기업이지만 그들도 실크로드의 상인들처럼 국경이나 종교 등 유형무형의 걸림돌을 넘어야 한다. 이따금 이교도의 의식에 끼어 경건한 모습을 하고있는 다국적기업의 중역들. 그들의 모습을 볼때마다 떠오르는 것이 실크로드의 길목에서 발굴된 날개달린 부처상이다. 불타와 천사 가브리엘을 합성한듯한 이 조각은 인도문화와 그리스·로마문화의 화합이라고 미화할수도 있지만 실크로드상인들에게 부닥친 종교장벽의 어려움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사이버로드에는 그런 벽이 없다. 유럽의 기업가가 동양의 불교신자에게 불상을 팔아먹을때 종교는 소비성향이라는 의미밖에 없다. 실은 길을 뜻하는 사이버로드라는 말도 올바른 표현은 아니다. 그것은 길같은 선이 아니라 지구촌시장이라는 공간의 개념에서 보아야 할것이다. 거기엔 인종의 피부색대신 단말기의 색만이 있다. 신앙은 없으나 굳이 신을 찾자면 매먼(Mammon)이라는 유일신이 있다. 이처럼 경제지구촌이 생겨나게 됐다고 반가워할 일만은 아니다. 한 도시에도 고급주택가가 있고 슬럼이 있다. 실크로드로도 득을 본 나라와 망한 나라가 있었듯 사이버로드로도 기회와 위험이 함께 흐른다. 특히 미국이 「인터넷의 자유무역지대화」를 앞장서 외치는 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실크로드가 한나라의 전성기인 무제때 생겼음을 되새기게 한다. 이를 두고 팍스아메리카나라는 찬사나 유일 강대국의 힘의 논리라는 볼멘 소리는 모두 부질없다. 인터넷 자유무역지대는 클린턴대통령이 제안하지 않아도 필연의 대세다. 우리의 과제는 그 원론에 대한 시비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라는 각론을 살피는 일이다. 무공해차가 필연적인 대세지만 그 차의 도입시기를 두고 자동차공업 선진국들이 후진국들을 골탕먹이는 것은 별개의 일이듯. 문제는 우리의 대응태세가 너무 굼뜨다는 점이다. 현재 인터넷에 개설된 가상점은 미국 25만개, 일본 4천개, 한국 5개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인터넷교역의 확실한 방향도 입력시키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우선 우리 경제의 관행인 정부주도를 여기에도 적용할 것인지 여부가 빈칸이다. 그러고 보면 이를 두고 정부부처간에 밥그릇싸움이 일어나지 않은것도 정부의 체질이 달라져서인지 아직 인터넷교역의 의미를 몰라서인지 헷갈린다. 그러나 가장 입력이 시급한 것은 우리가 사이버로드라는 역사적 전환점에 서있다는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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