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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8시50분. 주요20개국(G20) 정상들은 첫 회의 테이블에 앉기 전 더 분주했다. 첫날 국립중앙박물관의 리셉션에 이은 업무만찬이 캐주얼한 분위기였다면 COEX 3층 회의실은 긴장감으로 공기가 무거웠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회의 시작 예정 시간인 오전9시가 다 돼서 합류했으며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약 10분 뒤 마지막으로 회의장에 도착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다른 정상과 달리 자국 경호원 4명을 대동하고 들어서 삼엄한 행사장 입구의 긴장감을 더했다. 전략회의라도 하는 걸까. 회의장에 모인 정상들은 회의 시작 직전까지 세계 경제위기에 대한 각국의 의견과 친소관계에 따라 소그룹을 이뤄 대화를 나눴다. 오바마 대통령은 가장 활발하게 자리를 옮겨 다니며 정상들을 만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바로 옆 자리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도착하자마자 얼굴을 10㎝ 간격으로 맞대고 친근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경상수지 흑자국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중국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한쪽 구석에서 10분 이상 긴 대화를 나눴다. 정상회의를 지켜본 G20의 한 관계자는 "이해관계에 따라 한뼘의 양보도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의장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서 이번 회의는 피를 말리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코리아 이니셔티브' 준비에 분주했던 지난 9월 주요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의 의장국인 대한민국은 예상하지 못한 환율전쟁의 중심에 들어섰다.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으로 본격적인 막을 올린 환율전쟁은 미국이 중국의 위안화 절상을 압박하며 브라질ㆍ인도 등 신흥국으로 확대됐다. G20 관계자는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흔들 수 없는 환율문제가 터져나와 정상회의를 앞두고 피를 말리는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위안화 절상을 원하는 미국은 글로벌 불균형 해소라는 대전제로 중국을 계속 압박했다. 미국과 같은 경상수지 적자국은 중국 등 신흥국의 환율평가절하로 수출은 물론 내수에도 영향을 받고 있다며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여기에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예 대놓고 미국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등 내부단속부터 하라고 공세를 폈다. 브라질 등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신흥국에 전가시킨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10월23일 경주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회의. 우리나라는 미국과 함께 경상수지 흑자국들을 압박할 카드로 경상수지 흑자와 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4%(일정수치)에서 제한하자는 4%룰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의 제안은 경상수지 흑자국인 독일과 일본을 비롯해 중국ㆍ브라질의 강한 반박을 샀다. 메르켈 총리는 미국의 경상수지 목표제 제안을 '말도 안 되는 정책'이라고 노골적으로 비판했고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도 미국의 달러 찍어내기가 지겹다며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G20 회의를 열흘 정도 앞둔 11월 초 미국이 대규모 양적완화를 단행하며 환율전쟁은 물고 물리는 난장판으로 변했다. 미국의 양적완화에 미국을 제외한 G19 국가들이 모두 비난의 화살을 쏘았다. 8일부터 시작된 G20의 실무협상을 담당하는 재무차관과 셰르파 회의에서도 환율은 답을 찾지 못했다. 다른 의제를 제쳐두고 환율에 대해 집중적인 논의를 펼쳤지만 격론이 오가는 치열한 논의과정에서도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며 11일 정상들을 맞았다. 11일 정상회의가 시작된 국립중앙박물관. 앞서 열린 정상들의 양자회담 탓인지 오바마 대통령이나 후 주석이나 모두 지친 표정이었다. 리셉션과 업무만찬을 지나며 상황은 조금씩 변해갔다. 글로벌 경제를 위해 극단적인 환율전쟁은 피해야 한다는 기본에서 출발한 정상들의 논의는 경주회의보다 한발 진전된 타협안을 찾으며 시장결정적인 환율제도의 유지와 경상수지 가이드라인에 대한 일정 등에 대한 합의안을 도출했다. 정상회의가 막을 내린 12일 오후5시20분 오바마 대통령을 시작으로 정상들의 브리핑이 시작됐다. 회의가 끝났다는 안도일까. 여유를 찾은 정상들은 농담을 던지며 브리핑을 마쳤다. 그러나 돌아서는 뒷모습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다소 무거운 발걸음이, 후 주석과 메르켈 독일총리,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은 가벼운 발걸음이 느껴졌다. 결과적으로 이번 회의에서 미국은 별로 얻은 것이 없는 반면 독일을 비롯해 중국ㆍ브라질 등 신흥국들은 미국의 공세를 방어하면서 신흥국 거시건전성 규제 인정이라는 '성과'를 따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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