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영화에 등장하는 ‘맨’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온 몸에 달라붙는 독특한 옷을 입는다. 때문에 그들은 하나같이 근육질 몸매를 자랑한다. 둘째, 위기를 포착하면 언제 어디든 달려간다. 셋째, 정체는 늘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쯤 되면 관객들이 ‘맨’들에게 환호하는 이유는 너끈히 짐작할 수 있다. 신출귀몰 나타나 문제를 해결하고 사라지는 멋쟁이 영웅. 사랑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2년만에 다시 나타난 ‘스파이더 맨 2’ 역시 유구한 전통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영화는 스파이더 맨의 일상으로 눈길을 돌린다. 스파이더 맨이자 대학생 ‘피터’는 화려한 ‘거미줄 치기’로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에 나서지만 시간을 못 지켰다는 이유로 해고당한다. 수업엔 늘 늦고 숙제도 못 내기 일쑤. 공동화장실을 써야 하는 허름한 집에 살지만 집세가 밀려 늘 주인에게 구박받는다. 게다가 그가 사랑하는 메리제인과의 약속조차 늘 지키지 못해 단단히 찍힌 형편. 한편 피터가 존경하는 옥타비누스 교수는 실험 중 사고로 네 발 달린 괴물 ‘옥토퍼스’가 되면서 뉴욕는 혼란에 빠진다. 영웅의 손길이 필요할 때. 본격적으로 옥토퍼스와 스파이더 맨과의 한 판 대결이 펼쳐진다. 영웅의 또 다른 이면을 그리긴 했지만 영화는 사상 최대 제작비(2억 1,000만 달러)를 쏟아부은 만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미덕인 스펙터클한 볼 거리를 결코 놓지 않는다. 주인공이 맨해튼 마천루를 누비는 모습이나 실감나는 지하철 액션 신은 여전히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마지막 결투를 벌이는 허드슨 강의 부두 폭파 장면은 그 자체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그러나 영화 내내 이어지는 메리제인과의 로맨스는 다소 겉도는 느낌이다. 화려한 액션과 스파이더 맨의 인간적 고뇌에 묻혀 어중간 하게 쓸데없는 장면이 되어 버렸다. 감독이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린 걸까. 영웅의 인간적 면모를 그리는 것만으로도 ‘내용 없는 영화’란 비난을 면하기 충분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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