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기대를 뛰어넘는 양적완화(QE) 정책을 발표했다. 시장은 대략 5,000억~6,000억유로 정도의 자산 매입을 기대했지만 ECB는 1월 통화정책회의에서 매월 600억유로 규모의 국채·유로기관채·담보채를 오는 3월부터 2016년 9월까지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규모는 시장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는 1조1,400억유로다.
정책 효과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현재 독일·프랑스의 10년물 국채금리는 1% 이하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경우도 1%대 중후반 수준이다. 미국이 국채 매입을 바탕으로 한 QE1을 발표했을 당시 10년물 국채금리가 3%대 수준이었다. 미국의 경우 국채 매입으로 시중 금리가 낮아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지만 지금 유럽에서 이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리스 국채처럼 신용등급이 떨어진 채권을 사들이면 좋겠지만 이번 QE의 매입 대상은 투자등급 이상의 국채로 정해졌다. 또 그리스는 구제금융 협약을 준수하는 것을 전제로 7월부터 국채를 매입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회의적인 시각도 일리는 있다.
다만 ECB의 QE 발표와 맞물린 몇 가지 변화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국제유가의 저점 형성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아시아 원유 수출가격 할인 폭이 다소 줄었고 미국의 원유 시추공 개수는 최근 2009년1월만큼 급감해 있다. 공급경쟁이 마무리될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 글로벌 유동성이 국채 시장으로 유입되기 쉽지 않은 시점이다. 미국의 10년물 국채금리는 1.8%다. 반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의 배당수익률은 1.9%를 웃돌고 있다. 미국 기업들의 주가가 많이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배당수익률을 함께 감안하면 오히려 증시의 투자 매력이 더 높아 보인다. 셋째, 유럽도 경제지표가 다소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제조업 체감경기, 수출입 등과 같은 경제지표가 나아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QE·유로약세·저유가 등을 감안하면 경기가 더 나아질 가능성도 있다.
유로존 양적완화가 진행되는 시기에 국제유가가 반등하고 글로벌 유동성은 주식 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다. 또 유럽의 경기마저 개선된다면 주식시장 강세, 특히 신흥국 증시 회복에 대한 신뢰는 강해질 것이다.
물론 국내 기업의 실적은 부진할 것으로 보이고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이슈도 남아 있다. 신흥국들의 회사채 스프레드는 여전히 높고 화약고와 같은 러시아 문제도 언제 터질지 모른다. 각국이 어떤 정책으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ECB, 일본중앙은행(BOJ)의 환율 전쟁에 대응할지도 미지수다. 글로벌 금융 시장의 불안감이 없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반기 주식 시장의 반등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이 좋아져 주식 시장이 상승하는 경우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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