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항을 겪어온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한중 FTA는 지난 2012년 5월 협상을 개시해 지난해 9월 협상의 큰 틀이라고 할 수 있는 '모델리티'까지 합의했으나 이후 구체적인 상품시장 개방(양허) 품목을 두고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한국은 중국의 농산물 공세에 부담을 느끼는 반면 중국은 한국 같은 제조업 강국과 FTA를 맺어본 경험이 없어 돌다리를 두드리듯 조심스러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현안 브리핑에서 "양측의 이해를 맞추는 게 쉽지 않지만 정상회담을 계기로 돌파구를 찾기를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양국 정상의 결단이 있어야 FTA가 최종 타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지난해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라는 문구가 담겼고 이번 선언문에는 '중대한 진전이 있었다'는 내용이 포함돼 협상에 박차를 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현재 한중 실무협상단은 상품시장 양허안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한중 FTA 대상품목은 총 1만2,000여개에 이르는데 이 중 10%인 1,200여개의 상품은 '초민감품목'으로 현 관세를 유지하고 나머지는 '민감품목(10~20년 내 관세 철폐)'과 '일반품목(즉시 관세 철폐)' 등으로 분류된다. 한국은 쌀을 비롯한 농수산물 대부분을 초민감품목으로 따로 빼내 시장을 보호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중국은 제조업 분야를 지키겠다고 맞서고 있어 협상이 지지부진했다.
구체적인 산업별로 보면 한국은 특히 철강과 석유화학·석유제품 시장 개방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철강의 경우 중국 업체들의 공급 과잉으로 '밀어내기' 물량이 시장에 풀려 우리 업체가 고전을 겪고 있다. 예컨대 포스코의 영업이익은 2008년 7조1,739억원에 달했으나 지난해에는 2조9,961억원으로 줄었다. 중국 관세 철폐에 한줄기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석유제품 역시 중국이 잇달아 정제설비를 확충하면서 우리 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올해 상반기 대(對)중국 수출은 전년 대비 0.1% 감소했다.
반면 중국은 쌀 시장 개방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설령 쌀 빗장을 열어젖히지 못하더라도 협상 과정에서 강력한 카드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쌀 시장은 FTA 양허품목에서 제외한다는 게 정부의 원칙이지만 막판까지 협상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FTA 협상의 틀을 경제적 측면이 아닌 정치적 영역으로 외연을 넓혀 분석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핵·대일관계 등 예민한 지정학적 변수를 감안하면 우리가 FTA에서 '통 큰' 양보를 받아낼 가능성도 있고 반대로 일부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정상회담에서 정무적 판단이 이뤄지면 여기에 따라 협상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한국이 참여를 저울질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한중 FTA 협상의 또 다른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정부가 미국의 경제영토 확장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면 FTA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정부는 공식적으로 "FTA와 TPP는 별개"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또 쌀 개방에 따른 파장도 한중 FTA 품목별 빅딜의 발목을 잡을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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